슈베르트의 올바른 평가 by 다음엇지


진정한 헌신의 정신

글 : Antonin Dvorsak


이제 3년 후인 1897년 1월 31일은 프란츠 슈베르트가 탄생한지 1백년이 되는 날이고, 또 그가 죽은 지 69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는 겨우 32년의 생애를 살았으나 이 짧은 시간 안에 - 아니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18년이라는 세월 동안 - 1100여 곡이 넘는 작품을 썼다. 이러한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지만 그의 전기 작가들에 의해 기술된 그의 생활상을 볼 때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영감이 떠오를 때 기입할 악보 살 돈이 없을 정도로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며 궁핍한 초년 시절을 보냈고, 말년에는 장티푸스로 사망하여 장례 비용으로도 부족했던 10달러 정도만을 상속자들에게 남겼던 것이다. 후에 그의 생존 시 겨우 20센트 정도 밖에 되지 못했던 그의 가곡들 중 몇 작품으로 많은 출판업자들이 떼돈을 벌었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정말 유감스러운 것은 비엔나 사람들과 출판업자들이 그를 좀 더 실질적으로 평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왜 당시의 상황에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찾아내기가 어렵지는 않다. 피아니스트나 가수가 즉각적으로 인정을 얻는 반면에 작곡가는, 특히 슈베르트처럼 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너무 독창적인 경우에는 그의 시대가 오기를 기다려야만 한다. 우리는 그가 얼마나 젊은 나이에 죽었는가에 유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슬링크는 비엔나 사람들을 변호하며 말하기를 "슈베르트의 첫 작품집이 출간된 해와 그가 죽기까지는 겨우 7년의 세월이 지났을 뿐이어서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주로 '가곡 작곡가' 로서만 알려질 수 밖에 없었다." 라고 했다 ; 또한 그의 가곡들은 공식적인 연주회가 아닌 작은 모임에서나 불려졌다. 게다가 한편에서는 로시니가, 다른 한편에서는 베토벤이 수줍은 청년 슈베르트를 그늘에 가려놓고 있었다. 베토벤 자신도 그 자신이 죽을 때에게 비로소 슈베르트의 천재성을 발견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슈베르트의 관현악 작품들에 대해 언급할 때 우리는 당시의 오케스트라가 오늘날과 같지 않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비엔나의 가장 훌륭한 단체였던 음악 동호인 협회는 리허설에서 슈베르트의 다장조 교향곡(9번 The Great)이 "너무 길고 어렵다" 는 이류로 초기의 작품과 교체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것이 1828년의 일이니, 바로 작곡가가 사망했던 해였다. 10년 후에 열광적인 슈만이 이 교향곡의 위대성을 발견하고 라이프찌히에서 그 가치를 역설했따. 그곳에서는 또한 멘델스존이 이 작품에 대한 평가를 공고히 했다. 다음해에 비엔나에서 다시 이 작품이 무대 위에 올려졌으나 겨우 두 악장만이 연주되었고, 이것마저도 도니제티의 아리아가 그 사이에 끼어 토막나는 촌극을 빚고 말았다. 3년후에는 하베네크가 이 교향곡을 파리에서 연주하려고 했으나 오케스트라가 1악장의 연주를 거부했고, 2년 후 런던에서도 멘델스존이 필하모닉 연주회의 리허설에 이 작품을 들고 왔다가 똑같은 결과를 낳았다. 이런 일련은 사건들은 우리에게 이상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들은 역사적인 사실이며, 이제 어쩔 수 없이 슈베르트가 그 작품의 선율적 아름다움과 유려함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평가를 얻는 것이 왜 그렇게 더디었었는지를 설명해야만 할 단계에 온 것 같다. 그는 젊었고 부끄러움이 많았으며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더구나 음악가들은 그들이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그의 교향곡을 주저하지 않고 무시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해를 거듭할 수록 꾸준히 높아져 왔고, 아마 다음 세기에는 더욱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될 것이다. 안톤 루빈스타인은 슈베르트를 위대한 작곡가 5인 - 바흐, 베토벤, 슈베릍, 쇼팽, 글린카 - 의 명단에 포함했을 뿐 아니라,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야 말로 음악사에 있어 정상의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이런 식의 분류에 동의하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물론 그런 질문에 답변한다는 것은 어렵다. 나는 루빈스타인이 슈베르트를 위대한 작곡가들의 명단에 올려 놓은 것에는 찬성하나, 그가 모짜르트를 빼놓은 것에는 의견을 같이할 수 없다. 슈베르트와 모짜르트는 매우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 우리는 두 작곡가에게 똑같이 악기의 우아한 색채감과 자연스러운 선율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고,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보이는 그들의 다재다능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들의 놀라운 독창성에 있어서도 역시 그들은 비슷하다 ; 그런데 여기에 바로 그들의 대중적인 평가에 대한 가장 큰 장애 요인이 있는 것이다. 세월이 흐를 수록 나는 작곡가들 대부분이 다작에 대한 충동을 억누르지 못한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베를리오즈나 쇼팽처럼 약간의 예외가 있기는 하다. 또 그의 모든 천재성을 열 개의 위대한 음악극에 쏟아 넣은 바그너도 잊어서는 안된다. 만약 로시니가 40개의 오페라 대신 열 개만 쓰고, 도니제티가 70개가 아닌 7개의 오페라만 썼다면 그들 자신의 명성과 인류의 영원한 기쁨을 위해 더 낫지 않았을까? 심지어는 저 장엄한 바흐의 칸타타조차도 작품 수가 그토록 많지 않았더라면 좀 더 올바로 감상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작품들 중 하나가 분실되었다는 사실을 애석하게 여기기도 하는 것이다.

거장들의 위대한 작품들 중 많은 것들이 무지와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들에 우리는 종종 놀라지만 대부분은 작곡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작곡가들의 창작력 내부에는 작품을 쓰려는 충동이 도사리고 있고, 그것은 억제하기 힘들다. 슈베르트처럼 그의 천재성이 샘물과 같아서 고갈 상태가 되어야만 그 흐름을 멈출 수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슈베르트의 작품집은 브라이트코프와 하르텔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대중들, 아니 심지어는 전문가들에게조차 알려지지 않은 주옥같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제 연주가들과 지휘자들에게는 충분히 재현할 가치가 있는 이 보물단지에서 보석을 캐어낼 의무가 주어진 것이다.

슈베르트는 예술의 모든 형식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앞 서 언급했 듯이 서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 모짜르트처럼 다재다능하다. 그러나 한 분야에 있어서만은 이 두 거장이 판이하게 다르다. 모짜르트가 오페라에 아주 뛰어난 반면, 슈베르트는 아주 보잘 것이 없다. 그는 오페라를 작곡함으로써 천재성을 발휘하고 운명을 개선해 보려고 하였지만 시기가 좋지 못했다. 그 당시 비엔나는, 베토벤조차 무대에 올릴 작품을 쓰기를 주저할 정도로 온통 로시니의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한 사실들이 슈베르트에게 좌절감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그는 그의 모든 노력들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병마에 시달리던 말년에도 오페라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그는 불운하게도 항상 좋은 대본을 가지지 못해서, 그것들은 언제나 오페라에 부적합했다. 또 다른 좋지 않은 상황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실패의 주 원인은 무엇보다도 그의 천재성의 성격에 있었따. 그의 성격은 극적이기보다는 서정적이었으며 극장 무대와는 맞지 않았다. 리스트가 'Alfonso und Estrella'를 1854년, 바이마르에서 공연했을 때에도 그리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리스트는 다음과 같은 납득할 수 없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즉 그의 가곡들에서는 그토록 그림같고 표정 풍부한 반주부를 구사했던 슈베르트가 이 오페라에서는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된 피아노 반주 정도의 종속적인 역할만을 피아노에 부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리스트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슈베르트는 시가 얼마나 밀접하게 음악과 연결될 수 있는가를 그의 가곡들에서 보여줌으로써 오페라의 발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우리는 슈베르트의 오페라들이, 가정에서건 연주회장에서건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선율들이 넘쳐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단지 이 선율들이 너무 서정적이어서 오페라에 걸맞지 않을 따름인 것이다 ; 또한 그것들이 로시니에게 명성을 안겨다 준 장식적인 화려함이나 극적인 추진력을 갖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마왕" 이나 특히 "도플갱어(Doppelgaenger)" - 여기에서 우리는 '로엔그린' 에서의 오르트루드 장면과 같은 섬뜩한 화성감을 느끼게 해주는 화음들과 전조에 접할 수 있다 - 와 같은 가곡들에서는 정말로 드라마틱한 재능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으면서 말이다.

오페라 이외에도 유일하게 슈베르트가 정상의 자리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분야가 하나 있다. 바로 종교음악이다. 음악적인 견해에서 볼 때 그것들은 매우 아름답지만 일반적으로 진정한 종교적 분위기를 풍기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하이든이나 모짜르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내 생각으로는, 종교음악의 가장 심오한 정신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작곡가를 들자면 다음의 세 사람을 꼽고 싶다. 로마 가톨릭 음악이 그 정상을 차지하도록 해 준 팔레스트리나,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을 표현한 바흐, '탄호이저' 의 '순례자의 합창' 과 '파르지팔' 의 1막, 3막에서 진정한 종교적 화음으로 감명을 준 바그너, 바로 이 세 작곡가이다. 이들 세 작곡가에 비해 다른 작곡가들은 음악적 요소들에만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예외들 중 하나가 모짜르트의 '레퀴엠' 이며 특히 'Deis Irae' 는 몇 명의 작곡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마음을 감동시키고 영혼으로부터 경외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런 예외는 슈베르트의 종교음악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미리암의 승리의 노래'는 그의 몇몇 미사곡들처럼 뛰어난 작품이다. 찬송가들에서도 또한 그는 위대한 업적을 이룩해서 'Ab 장조의 여성을 위한 곡' 은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천상의 음악 같다. 그런데 음악에 있어서 정말로 종교적인 것이 어떤 것이냐라는 개념은 유머에 대한 감각과 마찬가지로 나라와 개인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아마도 그 당시 비엔나 사람들에게는 하이든이나 모짜르트, 슈베르트의 미사곡들이 너무 포근하지 않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슈베르트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비록 그는 가장 겸손한 사람들 중 하나였지만 교회음악의 경건성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확신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은 1825년 그가 부모에게 썼던 편지에서 알 수 있다. "찬송가에서 성모 마리아를 표현한 나의 신앙심에 대해 모두들 놀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경건한 마음을 불러 일으킨 것 같습니다. 나는 이러한 것들이 다음의 상황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억지로 나 자신을 경건한 상태로 몰아넣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그런 상태에 압도당했을 때에만 찬송가를 작곡합니다; 그런 경우에야말로 진정한 헌신의 정신이 우러난다고 봅니다."

슈베르트의 실내 음악, 특히 그의 현악4중주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3중주들은 모두 음악문헌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져야 한다. 4중주곡 중에서 D 단조는 매우 독창적이며, A 단조는 그야말로 매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슈베르트는 그의 실내 음악에 오케스트라와 같은 성격을 부여하려고 하지 않았따. 그러나 그는 아름다운 조성 효과를 놀랍도록 다양하게 창출해내고 있다. 여기에서도 선율의 흐름은 꾸밈이 없고, 연속적으로 그 풍미를 자아낸다. 쇼팽이나 로시니처럼 슈베르트도 선율이 화성적인 반주부를 제쳐 두고서도 우리를 충분히 매혹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그의 동시대 사람들은 그를 비난했다. 그가 다성음악이나, 여러 선율 성부들을 하나의 그물에 짜넣은 기교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대위법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설사 그가 그런 공부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질적으로 그의 야식을 바꿔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것은 처음 출발부터 많은 변화를 겪을 때까지 너무도 개인적인 것이어서 슈베르트의 경우는 그의 초기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슈베르트는 대위법적인 공부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교향곡들에서처럼 그의 실내음악에서도 우리는 다성음악의 아름다운 표본을 발견하곤 한다. - 예를 들면 C 장조 5중주의 '안단테' 와 D 단조 4중주를 보라 - 비록 그의 다성음악이 바하나 베토벤과 다를지라도 그것은 그 나름대로 찬사를 받을만 한 것이다. 멘델스존을 의심할 것도 없이 슈베르트보다 훨씬 위대한 다성음악의 거장이다. 그러나 나는 멘델스존의 것보다는 슈베르트의 실내음악을 더 좋아한다.

슈베르트의 교향곡들에 대해서도 나는 주저하지 않고 슈만, 멘델스존보다 우위에, 그리고 베토벤의 다음 자리에 올려 놓을 정도로 열렬한 찬사를 보낸다. 멘델스존은 관현악 편성과 형식에 있어서 모짜르트와 같은 타고난 재능을 갖고 있지만, 그의 작품 중 대부분이 그 생명이 짧다. 슈만은 가곡, 실내악, 피아노 작품들에서 훌륭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고, 그의 교향곡들 역시 걸작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항상 관현악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 형식은 작곡가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악기 편성도 만족스럽지만은 않다. 그러나 슈베르트의 경우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때때로 부주의하게, 또 산만하게 쓰기도 하지만, 표현 수단에 있어서는 흠잡을 게 없고, 형식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데 있어서도 거침이 없다. 화성과 전조의 독창성, 그리고 관현악의 색채에 있어서도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라이만 박사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화성의 사용에 있어서 슈만과 리스트가 둘 다 슈베르트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다. 슈베르트를 열광적으로 찬양했던 브람스도 마찬가지로 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진심으로 그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었음을 인정한다.

나는 앞에서 슈베르트가 형식을 능숙하게 다루는 데 거침이 없다고 했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스무살이 되기 전에 썼던 초리 5개의 교향곡들에 잘 나타나 있다. 이것들을 연구하면 할 수록 나는 더욱 경탄하게 된다. 하이든과 모짜르트의 영향이 분명히 드러나지만, 슈베르트의 음악적 개성은 선율의 성격 속에, 그리고 관현악 편성의 절묘한 부분들에서 명백하게 표현되고 있다. 그의 후기 교향곡들에서는 더욱 독특하고 독창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초기 작품들에서는 그러헥도 강력했던 하이든과 모짜르트의 영향력이 점점 약화되어 가고, 그 동시대인인 베토벤과는 시작부터 공통적인 면이 없었다. 그러나 베이스의 선율적인 흐름과 활력에 있어서는 베토벤과 비슷한 면이 엿보인다. 그러한 베이스들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미완성 교향곡' 과 '다장조 대(the Great)교향곡'은 음악문헌에 유일무이한 공헌을 했으며, 절대적으로 새롭고 독창적이다. 이들을 가장 특정지울 수 있는 것은 역시 전체를 지배하는 노래하는 듯한 선율이다. 그는 교향곡에 가곡 선율을 도입하였는데, 그 변형이 너무도 뛰어나서, 슈만은 관현악 파트에서 인간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교향곡들이 슈베르트의 최고의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이것들만이 우리 연주회 프로그램에 자주 오른다는 것은 딱한 일이다. 나는 다장조의 6번과 5번은 지난 겨울 국립음악원 학생들과 12번이나 연주했었다. 그들은 그 교향곡드렝서 나와 기쁨을 같이 나누었고, 그 심오한 아름다움을 바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전에 레흐 바인가르트너에 의해 '5번 교향곡' 이 베를린에서 연주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매우 기뻤고 감사했다. 이 사람은 이와같은 초기작품을 연주회 프로그램에 올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몇 안되는 지휘자 중 한 사람이다. 슈베르트의 4번 역시 감탄할만한 작품이다. 이것은 '비극적 교향곡' 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데, '마왕' 이 쓰여진지 일년 후인 19살 때의 작품이다. 이 교향곡은 그렇게 젊은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깊은 비애감을 나타낼 수 있을까 하는 의아심을 자아낸다. 아다지오 악장에는 '트리스탄' 이 발하는 것 같은 번민의 괴로움이 두드러지게 암시되어 있는 화음들이 나타난다. 물론 슈베르트만이 바그너적인 화성들을 예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글룩과 모짜르트에 의해 부분적으로 예시되긴 했지만, 바그너나 그밖의 다른 현대 작곡가들이 자신들의 아름다운 관현악 음색 - 그저 소음 정도가 아니라 풍부하고 따뜻한 색감을 조성해 주는 역할로 관을 사용함으로써 - 중 많은 것들을 슈베르트에게서 본받았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Symphony No. 9 in C Major.
2) Andante con moto
WIENER PHILHARMONIKER, KARL BÖHM, 1973

다장조 교향곡(9번)에서의 음색 처리의 풍부함과 다양함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이것은 항상 우리를 매혹시키며 신선하게 남아있는 작품이다. 여기에는 구름과 그 사이를 가르며 반짝이는 섬광의 효과가 있다. 이것은 또한 슈베르트의 작품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언젠가 한스 리히터 박사가 역설했떤 말의 전부를 설명해 주고 있다. - 거장들은 항상 그들의 천재성을 느린 악장에서 가장 명백하고 가장 즐겁게 표현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다장조 교향곡' 보다 '미완성 교향곡'을 더 좋아한다. 그 곡의 근본적인 아름다움은 제쳐두고라도 이 작품은 산만함으로 빚어지는 과오를 범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슈베르트 교향곡들이 중대한 결점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지루하고 장황하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언제 멈춰야 할지 모르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만약 반복구들만 생략된다면, 전혀 길지 않다. 슈베르트의 경우는 사실 교향곡들이 매우 길게 쓰여진다는 일반적인 통례에 대한 실례로 볼 수 있다. 브루크너의 8번 교향곡이 지난 겨울 비엔나에서 연주되었을 때 음악 애호가 협회는 전 연주회를 그 곡에만 할애해야 했다. 어느 연주회에서도 다시 이런 시도는 되풀이 되지 않았는데, 만약 길이만 좀 더 짧았더라면 이 교향곡의 연주는 세계 도처로 확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언급은 일반적인 적용이고, 우리는 하이든과 모짜르트가 찬성했던 교향곡의 길이에 눈을 돌려야만 한다. 이 점에 있어서 슈만은 하나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데 그의 내림 나장조나 라단조 교향곡들, 그리고 실내음악을 보면 잘 드러나 있다. 현대인들의 취향은 간결하고 응축되어 있는 음악을 요구하는 것이다. (주: 1890년대 이야기..)

독일, 영국, 미국에서 슈베르트의 기악음악과 실내음악, 관현악 작품들은 처음에 그들이 무시당했던 것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정도로 널리 유행되고 있다. 프랑스 사람들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은 두 권의 슈베르트 전기를 펴내긴 했지만, 다른 독일 작곡가들에 대해서처럼 이 거장에게 똑같은 공감을 표현헀다고는 볼 수 없다. '다장조 대교향곡' 을 연주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이후로 40년 동안이나 이들 연주회에서 슈베르트 관현악 작품들은 연주되지 않았었다.

이러한 사실이 프랑스의 저명한 비평가인 페티스의 다음과 같은 독특한 주장을 뒷받침해 줄 지도 모른다. 그에 의하면 슈베르트의 기악 작품들은 그의 가곡들보다 덜 독창적이며, 대중성은 얼마나 유행하고 있느냐 하는 측면으로 판별된다는 것이다. 후반부의 암시적 어투는 오늘날 비평을 붙일 가치조차 없는 것이지만, 비평의 전반부에 대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반박하겠다 ; 나는 물론 슈베르트의 가곡들을 매우 훌륭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의 기악 음악에 더욱 큰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만약 그의 작품들이 둘만 제외하고 모두 사장될 상황에 처해진다면 나는 마지막 두 개의 교향곡들을 남겨 놓으라고 말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그런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그의 작품들 대부분에서 슈베르트의 선율, 리듬은 독특하지만, 외형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는 가곡들, 그리고 피아노 소품들에서 가장 독창적이다. 교향곡, 실내음악, 오페라와 종교음악에서 그는 고전주의의 전형을 따르고 있지만, 가곡들과 '악흥의 순간', '즉흥곡' 과 같은 피아노 소품들에서 낭만주의의 진면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는 24곡이나 되는 피아노 소나타에서는 역시 고전주의적 전형을 따르고 있고, 우리는 말련의 3년 사이에 썼던 3곡의 소나타에서조차 베토벤 양식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은 그가 초년시절에 썼던 피아노 소품들이나 가곡들에서는 전혀 그러한 영향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상하게 여겨진다. 그가 18살과 19살에 썼던 '마왕' 이나 '방랑자'는 모든 부분이 그야말로 슈베르트이지만, 그 반면에 이 기간에 씌여졌던 피아노 소나타나 교향곡들은 훨씬 모방적이고 덜 독창적이다. 이러한 원인은 의심할 것도 없이 긴 서사시보다는 짧은 서정시가 쓰기 쉬운 것처럼, 젊은 작곡가에게는 보다 정교한 소나타나 교향곡에서 보다는 짧은 형식들에서 독창성을 나타내기가 쉬웠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슈베르트가 31살이라는 나이에 죽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따. 낭만주의 학파는 짧은 형식을 추구하는 경향을 갖고 있었고, 베버가 그 길을 제시하는 데 도움을 주기는 했다. 하지만 낭만주의 학파가 즐겨 다루었던 피아노 소품드렝 특이한 개성을 부여한 것은 슈베르트였다. 그의 '악흥의 순간'은 독창적이며, '즉흥곡 작품 90'의 세 번째 곡은 멘델스존의 '무언가' 의 싹을 틔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슈만은, 슈베르트의 양식이 베토벤의 양식 보다는 좀 더 독특한 스타일로서 피아니스틱하다고 말한 바 있었는데 아마도 이것은 이러한 소품들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슈베르트나 슈만이 이런 점에 있어서 가장 독특한 스타일로 피아노곡을 썼던 바흐나 쇼팽에 필적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슈만이 슈베르트의 후기 소나타드렝 대해 얕잡아보는 투로 언급했던 것에 의견을 같이 할 수 없다. (그는 '더욱 위대해진 창의력의 단순미', '화려한 독창성이 필요없는 독주곡' 이라고 비꼬면서 이것을 슈베르트 말년의 질환과 관련시키고 있다) 물론 나는 슈베르트가 이 소나타들에서 최선을 다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나는 그 곡들 중 일부 - 특히 올림 다단조의 우아한 '아다지오' 악장을 가진 마지막 내림나장조 소나타 - 에 대해서는 크나큰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모든 면들을 살펴 볼 때 나는 그의 피아노 소품보다는 그의 소나타들을 더 좋아하게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곡들을 연주회장에서 들어볼 수가 없다!

'즉흥곡' 과 '악흥의 순간' 이 일련의 낭만적 소품드르이 근워인 것처럼 슈베르트의 매력적인 왈츠들이 한편으로는 란네르나 슈트라우스의 춤곡들, 다른 한편으로는 쇼팽의 왈츠들을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두드러진 다른 분야에서처럼 이런 변변찮은 분야에서도 역사가들은 슈베르트에게 그의 독창성과 영향력에 대한 충분한 명성을 부여해 주지 않고 있다.

슈베르트의 다른 작품들보다 피아노 음악에서, 우리는 슬라브적 특성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이것을 음악예술에 두드러지게 도입한 최초의 작곡가였다. 예를 들면, 똑같은 악절에서 장조와 단조를 기묘하게 교대시키는 수법을 들 수 있는데, 물론 이것만이 그의 음악에서 발견되는 슬라브적 특성은 아니다. 그가 헝가리에 체류하는 동안 그는 그 민족 특유의 선율과 리듬적 특색에 동화되어서 그것들을 그의 예술에 구체화시켜 놓았다. 그럼으로써 그는 헝가리의 선율을 유럽 음악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만들었던 리스트나 브람스, 그 밖의 다른 작곡가들의 선두주자가 되었던 것이다. (주: 보리즈섹을 빼놓으면 안되겠다. 슈베르트보다 선배로 체코사람이고 피아노 소품과 즉흥곡 분야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그 역시 1828년 34세의 나이로 요절) 오늘날의 작곡가들은 슬라브 민속 음악의 풍부한 보고로부터 헝가리인, 러시아인, 보혜미아인, 폴란드인의 다양성을 추출해 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인이나 화가나 그들의 예술의 뛰어난 것들 중 대부분의 근거를 민족적인 전설이나 노래, 전통에 두고 있는데, 음악가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어쨌든 슈베르트는 그 길을 최초로 제시한 사람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아마도 슈베르트 일생에서 가장 운 좋은 일이라면 유명한 테너 가수인 포글과 친분을 맺은 일일 것이다. 둘의 만남은 그의 가곡들이 가수에 의해 예술적으로 해설될 수 있는 이점을 살려주기 위해 친구들이 주선해 준 것이었다. 포글은 처음에는 그의 음악에 싫증을 느낀 체하며 겸손한 젊은 반주자의 가곡들에 무관심한 듯 했지만, 곧 적극적인 관심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이 가곡들은 비엔나의 사교계에 점차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가곡들에서, 비록 '작곡가의 목소리'를 빌지만 그의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사람들은 나의 손가락들이 건반을 누르면 그것이 노래하는 목소리로 바뀐다고들 합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저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이것은 그가 죽기 3년 전에 쓴 것으로써 그의 겸손함이 잘 나타나 있다. 요셉 폰 스파운이 최근 펴낸 회고록에는 포글과 슈베르트가 비엔나의 연주회에서 연주를 하고 나면 숙녀들이 작곡가는 전적으로 무시한 채 테너 옆으로 몰려들어서 그를 떠받들곤 헀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괴로워하거나 시샘하는 대신 정말로 즐거워했다고 한다. 찬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를 당황하게 해서 한 번은 뒷문으로 살짝 피해서 달아났다고도 한다.

비엔나 사람들은 슈베르트와 포글이 그들을 위해 연주했던 가곡들이, 음악사에서 하나의 새로운 시대를 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곡과 서정적인 노래에 있어서 한 시대의 일인자일 뿐만 아니라 아무도 그를 능가하지 못했다.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도 몇 곡의 가곡들을 썼지만, 그들의 천재성과 독창성을 거기에서는 별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바하가 피아노 음악으로, 하이든이 관현악 작품으로 그랬던 것처럼 가곡으로써 신기원을 이룩한 것이다. 모든 다른 가곡 작곡가들은 그의 발자취를 좇은 제자들이며, 슈만, 리스트, 브람스와 같은 거장들의 아름다운 가곡들 역시 그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슈베르트 이래로 쓰여진 가장 훌륭한 가곡을 뽑으라면 나는 브람스의 'Magelonen Lieder'를 들고 싶다. 그러나 한 편으로 비평가 엘러트가 언젠가 나에게 리스트야말로 그의 가곡에서 시와 음악을 가장 잘 융합시킴으로써 모든 것의 극치를 이룬 작곡가라고 한 말에도 동의한다.

슈베르트의 가곡들에서도 역시 우리는 시와 음악의 조화를 발견할 수 있다. 테너 포글이, 스파운이 말했듯이 그는 '음악으로뿐 아니라 시로써도 청중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독자적인 방식으로 노래하는' 예술가였다는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수는 흔치 않았다. 이런 점에서 포글을 모방할 수 있는 가수가 없었기 때문에 리스트가 이 가곡들을 피아노로 편곡하여 대중적인 인기를 얻도록 했다는 사실은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슈베르트는 목소리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 그래야만이 우리는 얼마나 밀접하게 시와 음악이 융합되어 있으며, 얼마나 뛰어나게 선율적인 액센트가 시와 맞아 떨어지는 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바그너식의 - 그 역시 슈베르트 후기 가곡들에서 보여지는 전도로써 파생되는 강력한 정서적 효과를 모방하고 있다 - 단어 반복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슈베르트의 선율선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흘러서, 때때로 그는 좋은 음악을 오페라나 몇 개의 가곡들에서 보여지는 형편없는 가사에 낭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통은 가장 훌륭한 시가 가장 훌륭한 음악에서 그의 창조적인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다작 능력은 정말로 놀랄만한 것이었다. 그는 하루에 8곡이나 되는 가곡을 작곡했으며, 한 해에 99곡을 작곡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주: 1816년) 그래서 그의 가곡들의 수는 무려 600여곡에 이르고 있다. 이 가곡들 중 뛰어난 것들은 이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고, 이미 수없이 논의되었기에 그것들에 대해서 새로운 비평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가곡집의 첫마디로써 시적인 분위기로 우리를 감싸는 슈베르트의 능력 말이다. 그러한 천재성의 일면을 그의 가곡 'Der Leiermenn' 에서 볼 수 있다. 이 곡은 낡은 hurdy-gurdy(주: 손잡이를 돌려서 연주하는 오르간의 일종. 거리의 악사들이 주로 사용했다)를 타는 악사의 이야기로, 슈베르트는 악사의 비애에 대한 우리의 동정심을 그의 슬픈 음악으로 불러일으키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곡 전체를 지배하는 평이하고 단조로운 형태가 오히려 우리 눈 앞에 생생하게 모든 장면들을 끝까지 전달해 주고 있다. 슈베르트 이전에 어떤 가곡 작곡가도 그러한 효과를 창출해내지 못했다. 그가 일단 그 길을 제시하자 다른 작곡가들도 열심히 그의 발자취를 좇게 되었다. (*)


Die Leiermann in Die Winterreise
노래) Dietrich Fischer-Dieskau
반주) Alfred Brendel


덧글

  • 2009/06/10 17:5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다음엇지 2009/06/11 09:31 #

    몇몇 아리아나 서곡을 제외하고는 관심들이 없더니 최근에는 공연 DVD도 나오더군요. 클래식 음악쪽에서는 연주되는 레파토리가 '뻔'한 편이라서, 연주자들도 생존을 위해서 고민이 많습니다.
  • 로맨티스트 2009/06/10 19:16 # 답글

    빨강머리 앤을 시집갈 때 혼수품으로 가져갔던 다이애나는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다이애나 배리 x - 확인 정보.
  • 다음엇지 2009/06/11 09:32 #

    요즘 드보르작 선생이 엉뚱하게 해동성국에서 고생이 많으시죠.. 흐..
  • 그림자놀이 2009/06/15 00:52 # 답글

    드보르작의 이 글을 부분 인용된 것만 영문으로 읽어본 적이 있는데요, 혹시 원문 출처를 알 수 있을까요?
  • 다음엇지 2009/06/15 11:46 #

    흠.. 저도 scrap 해 놓았던 것이라서요. 원출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The Century Illustrated Monthly Magazine, Vol. XLVIII, No. 3 (July 1894), pp. 341-46.

    도서관에서 찾아 보셔도 되구요. 일단 제가 스크랩 해두었던 것을 바로 올려 드릴꼐요.
  • arsakes 2013/09/16 01:46 # 삭제 답글

    ! 출처를 명시해서 링크를 겁니다 ^^
  • 판돌 2015/09/12 11:31 # 삭제 답글

    이렇듯 열광했었던 드볼작조차도 슈베르트의 네손을 위한 피아노 음악과 현악사중주 15번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아서, 그의 시야보다도 슈베르트 음악의 이해의 폭과 명성은 더욱더
    넓어지리라 봅니다. 후기 피아노 소나타의 경우도 마찬가지구요. 단지 베토벤의 양식에 따랐다 정도로
    언급될 곡들은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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