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뒤집어보기] 11. 에이본리 마을의 들꽃과 나무들, 정원의 허브 by 다음엇지

Green Gables, Cavendish;Peter Brensnen;watercolor

그린 게이블즈 농장의 풍경

『빨강머리 앤(Anne of Green Gables)』에는 약 60여 종류의 식물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한 작품에서 이렇게 많은 종류의 식물 이름이 직접 언급된 것은 드물지 않을까 합니다. 이를 통해 꽃과 나무에 대한 모드 여사의 관심과 애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앤이 처음 그린 게이블즈의 아침을 맞으며 보게되는 창밖의 그린 게이블즈의 풍경 묘사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다음은 앤이 자신의 방이 될 2층의 동쪽 파풍창(gable)을 통해서 바라본 아침의 풍경입니다. 4장 「Morning at Green Gables(그린 게이블즈에서 맞이하는 아침)」의 발췌입니다.

A huge cherry-tree grew outside, so close that its boughs tapped against the house, and it was so thick-set with blossoms that hardly a leaf was to be seen. On both sides of the house was a big orchard,
one of apple-trees and one of cherry-trees, also showered over with blossoms; and their grass was all sprinkled with dandelions.
In the garden below were lilac-trees purple with flowers, and their dizzily sweet fragrance drifted up to the window on the morning wind.

창의 바로 아래에는 큰 벚꽃나무가 있어, 집에 닿을듯이 가지가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가지 가득 꽃이 피어 있어 잎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집의 양옆은 넓은 과수원이었다. 한편은 사과나무들이, 다른 한편은 체리나무들로
어느쪽이나 꽃들이 하늘로부터 춤추듯이 내려와 쌓인듯이 하얀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과수원 아래는 초원으로 노란 민들레가 흩뿌려진듯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아래쪽 뜰에서는라일락 나무들에서 보라색의 꽃들이 피어,
숨막힐듯 달콤한 향기가 아침 바람에 실려 창가에까지 감돌고 있었다

                                      - CHAPTER IV, Morning at Green Gables

뒷 부분에 사과를 따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린 게이블즈 농장은 사과와 체리 과수 재배하는 작은 과수원이기도 합니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은 위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5월이나 6월이 되어야 봄이 찾아 옵니다. 그린 게이블즈의 봄은 하얀 벚꽃과 사과꽃이 만개하고 목초지에는 민들레가 가득하고 정원에는 달콤한 라일락이 피는, 앤이 얼마나 감탄하며 황홀감에 잠겼을지는 안봐도 삼천리입니다. 계속해서 정원의 풍경입니다.
Roadside, Lupins, Cavendish;Peter Brensnen;watercolor

Below the garden a green field lush with clover sloped down to the hollow where the brook ran and where scores of white birches grew, upspringing airily out of an undergrowth suggestive of delightful possibilities in ferns and mosses and woodsy things generally. Beyond it was a hill, green and feathery with spruce and fir;

정원쪽으로는 클로버 가득한 목초지로 골짜기를 향해 완만하게 비탈져 있었다. 골짜기에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하얀색 자작나무가 서 있었다. 그 아래에는 아마도 고비며 이끼며 이런저런 숲의 식물들이 싱싱하게 돋아나고 있으리라. 골짜기 건너편의 언덕에는 가문비나무며 전나무등이 초록색 깃털 모양의 잎들로 덮여 있었다.

                                     - CHAPTER IV, Morning at Green Gables

정원쪽으로 소를 방목하기 위한 클로버 가득한 목초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 앞에는 자작나무, 가문비 나무, 전나무등 추운 캐나다에 자생하는 침엽수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아래에는 고비와 이끼가 자라고 있는데요.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이끼나 고비가 축축하고 어두운 음지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영미 문학에서는 좀 다릅니다. 우선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의 낭만적인 시에 이끼(mosses)가 종종 등장하구요. 테니슨(Alfred Tennyson)은 고비(ferns)의 아름다움을 노래했고, 세익스피어 조차도 <헨리4세>에서 고비의 마법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비와 이끼향을 사용한 입욕제라던가 향수도 있어서 뭔가 상쾌하고 시원하다 개운하다는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논문들을 잠시만 검색해 봐도 영미 문학에서의 이끼와 고비라는 타이틀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과향이 나는 제라늄

이 장에서는 유명한 부엌에 있는 애플 제라늄 화분에 '이쁜이(보니, Bonny)' 라는 이름을 붙이면 이야기가 나오죠. 예전에 스코틀랜드 이야기를 할 때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부엌에 제라늄이 있는 것은 관상용이 아니라 과자등 요리에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꽃 자체는 자그마해서 관상용이라기에는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잎은 사과뿐 아니라 장미향, 살구향, 생강향 등의 품종에 따라 다양한 향을 냅니다. 우리가 모과나 유자청을 만드는 것처럼 설탕액에 잎을 재워두면 좋은 향기가 배어서 홍차등을 마실 때 넣어 마실 수 있도록 곁들여 낸다거나, 시럽등에 재워두면 역시 좋은 향이 나는 시럽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마릴라 역시 제라늄을 요리에 사용했던 겁니다. 필요할 때마다 바로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화분에 심어서 창가에 놓아 두고 있었던 것이죠.

다이아나 배리 집의 화려한 정원

어디까지나 수수한 그린 게이블즈의 정원에 비해서 이웃 다이아나 배리의 정원은 무척 화려하게 가꾸어져 있죠.
제 12장「A Solemn Vow and Promise (엄숙한 맹세와 약속)」에서 앤은 다이아나와 처음 만납니다. 안내받은 정원의 묘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꽃들이 등장합니다.하트 모양의 핑크색 꽃들이 아래쪽으로 늘어져 피는 금낭화(bleading heart) 와 진홍색의 모란꽃(cromson peony), 수선화(narcissus), 스카치 로즈(Scotch rose), 매발톱꽃(columbine), 잎을 물에 담궈 흔들어서 거품을 일으킨 다음, 비누처럼 사용하기 때문에 비누풀꽃(Soap wort)이라고도 부르는 패랭이꽃(Bouncing Bet), 예전부터 방충제로 사용하던 개사철쑥(southernwood), 길다린 잎에 하얀 줄무늬가 이뻐서 관상용으로 사랑받는 벼科의 은선초(銀線草, ribbon grass), 향료로 사용되는 박하(mint), 난科의 아담과 이브(Adam and Eve), 나팔 수선화 (daffodil), 작은 하얀꽃들이 흐드러지는 가축의 사료용으로 그리고 당도 높은 꿀을 만드는 양봉 용으로 사용되는 스위트 클로버(sweet clover), 강렬한 자줏빛 꽃의 질감이 색비름같은 수레동자꽃(scarlet lightning), 짙은 사향의 꽃이 피는 사향꽃(musk flower).

다양한 꽃들이 나옵니다만 위에 묘사된 꽃들의 색깔들을 조합해 보면 언뜻 봐도 무척 화려한 색깔과 짙은 꽃향기 가득한 정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누대용으로 쓰던 비누풀꽃과 요리에 사용하던 박하꽃, 방충제로 쓰던 개사철쑥등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면 실용적인 허브 식물들도 꽤 등장하고 있습니다. 멋과 실용이 어우러진 공간이라고나 할까요.

배리씨네 정원 이야기 by 다음엇지
7월 5일 아침은 춥고 어둡고 무섭게 비가 올 것만 같았다. by 다음엇지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이 중요한 장면을 동양에 처음 이 책을 소개한 무라오카 하나코 선생은 "다이아나의 집 정원은 나무가 많고 꽃밭뿐이었기 때문에 운명을 결정하는 이와 같이 중대한 기회가 아니었더라면 앤은 충분히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라고 묘사를 생략하고 간략화 해 놓고 있기 때문에 이후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중역되어 소개된 대부분의 판본 역시 이 부분의 묘사가 부족했었죠. 번역본에서 다이아나네 집 마당의 정원에 대한 모습이 알려진 것은 최근 일이라고 해야겠네요. 그래서 책의 완역에 힘쓰고 계시는 마츠모토 선생님도 이 부분에 대한 소개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The Barry garden was a bowery wilderness of flowers which would have delighted Anne's heart at any time less fraught with destiny. It was encircled by huge old willows and tall firs, beneath which flourished flowers that loved the shade. Prim, right-angled paths neatly bordered with clamshells, intersected it like moist red ribbons and in the beds between old-fashioned flowers ran riot. There were rosy bleeding-hearts and great splendid crimson peonies; white, fragrant narcissi and thorny, sweet Scotch roses; pink and blue and white columbines and lilac-tinted Bouncing Bets; clumps of southernwood and ribbon grass and mint; purple Adam-and-Eve, daffodils, and masses of sweet clover white with its delicate, fragrant, feathery sprays; scarlet lightning that shot its fiery lances over prim white musk-flowers; a garden it was where sunshine lingered and bees hummed, and winds, beguiled into loitering, purred and rustled.

베리씨네 정원은 꽃으로 가득한 들판같아서 운명을 결정하는 순간이 아니었다면 충분히 앤에게 기쁨 충만한 장소였을 것이다. 정원 주위에는 크고 오래된 버드나무(willow)와 키 큰 전나무(fir)들로 둘러 서 있고, 아래로는 그늘을 좋아하는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깔끔하게 조가비로 테두리를 두른 각진 통로가 교차하고 있어서 마치 축축해진 빨강 리본들 같았고 그 사이 화단들에는 고풍스러운 꽃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장밋빛 금낭화(bleeding-heart) 와 크고 멋진 진홍색의 작약(peony); 순백의 향기로운 수선화(narcissi) 와 가시많고 향긋한 스카치 로즈(Scotch rose); 분홍, 파랑, 흰색이 어우러진 매발톱꽃(columbine) 과 옅은 보랏빛이 도는 패랭이꽃(또는 비누풀꽃 Bouncing Bet); 개사철쑥(southernwood) 덤불과 은선초(銀線草, ribbon grass)와 박하(mint); 자줏빛의 아담과 이브(Adam-and-Eve;난의 일종), 나팔수선화(daffodil), 그리고 수많은 스위트 클로버가 하얗게 가냘프고 향긋한 솜털을 흩날리고; 주홍색 번개가 쳐 불붙은 듯한 수레동자꽃(scarlet lightning)들이 하얀 사향꽃 위로 눈에 들어 왔다; 정원은 햇살이 떠나기 아쉬운 듯 서성대고, 벌들이 한가롭게 윙윙대는, 바람조차 매혹되어 늦장부리며 속삭이며 살랑거리는 곳이었다.

* 꽃들을 연결하면서 6개의 ';' 를 통해 구분하고 있다는 것은 화단이 6개로 구획지어져 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그 사이를 통로가 가로 세로 직각으로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프린스 에드워드섬의 토양은 붉은 색이기 때문에 "젖은 빨강색 리본같은(moist red ribbons)" 라는 표현이 가능하다.

                               - CHAPTER XII A Solemn Vow and Promise

메이플라워(Mayflower) 이야기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제 20장「 A Good Imagination Gone Wrong (빗나간 상상력)」에 나오는 이른 봄 애본리의 정경과 꽃과 나무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앤이 사랑하는 메이플라워가 피는 봄의 들판의 모습이 여기 있습니다.
The maples in Lovers' Lane were red-budded and little curly ferns pushed up around the Dryad's Bubble. Away up in the barrens, behind Mr Silas Sloane's place, the Mayflowers blossomed out, pink and white stars of sweetness under their brown leaves.

연인의 오솔길의 단풍나무들은 빨간 싹을 내밀었고, 나무요정의 샘가에는 곱슬곱슬 어린 고사리가 기운차게 땅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비탈길을 올라 사일러스 슬론가 뒤편의 황무지에는 메이 플라워가 방긋 꽃을 틔우고, 갈색 잎사귀 아래로 핑크빛과 새하얀 별모양의 꽃들이 달콤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 CHAPTER XX A Good Imagination Gone Wrong

그리고 캐나다의 상징이기도 한 단풍나무는 캐나다의 가을을 붉게 물들입니다. 봄에 새싹이 올라올 때도 붉은 색이죠. 그리고 메이플라워(mayflower)는 글자 그대로 5월에 피는 꽃나무의 총칭인데 영국에서는 주로 산사나무(hawthorn)를 말합니다. 산사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인 장미科 관목으로 가지에 가시가 있고 열매는 약재로 씁니다.

하지만 빨강머리 앤에 나오는 Mayflower는 우리나라의 돌배꽃에 가까운 Trailing arbutus 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기후상 높은 산에 자생하는데 거칠지만 배수가 좋은 토양에서 자랍니다. 잎은 딱딱하고 줄기는 갈색으로 털이 성기게 나있는 관목형태로 땅쪽에 붙어 자랍니다. 이른 봄 아직 눈이 남아 있는 시점에 핑크색이 도는 하얀색의 향긋한 꽃을 피웁니다. 꽃은 가지 끝에 몇깨씩 붙어서 핍니다. 이 꽃이 mayflower로 불리는 이유는 mayflower 라는 배를 타고 처음으로 북미에 상륙한 개척자들이 이 꽃들을 그렇게 불렀던 데에서 기원한다고 합니다. 노바 스코시아에서는 州를 상징하는 꽃으로 선정되어 있습니다. 영국과 북미쪽의 영단어는 같으면서도 이렇게 다른 면들이 있습니다. 기후와 식생이 다르기 때문이겠죠.

향기가 좋고 이쁘기 때문에 어머니날에 부모님께 드리기 위해서 또는 원예가들에 의해서 정원에서 기르게 하기 위해서 남획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야생에서는 거의 멸종위기로 보호식물종에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미 앤과 몽고메리가 사랑하던 캐나다의 풍경은 100년이 지난 지금은 사라져 가고 있는 셈입니다.

May flower from Kindred Spirits NewsLetter May. 2006 by 다음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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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맨티스트 2009/06/08 15:18 # 답글

    에이번리의 앤 100주년 기념 게시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유코 님이 참고해야 할 듯... ㅋㅋㅋ
    우리도 이제 만만치 않은 겁니다. 그런 겁니다.
  • 다음엇지 2009/06/08 15:31 #

    결국은 유코님의 글들로 다 수렴되는 걸요.. T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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