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Review] 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 by 다음엇지


소시적에 유명하던 영영한 사전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혼비' 영영한 사전이었다. 그냥 영영사전을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꽤나 인기가 있던 아이템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왠지 모르게 민중서림의 사전들을 선호했지만 사실 당시 사전들은 가독성에 문제가 있었다. 이번에 2009년에 나왔다는 새로운 버전을 옥스퍼드 영어 사전을 받아 살펴보다 보니 바로 '혼비' 사전이다. 어느새 인터넷 영어 사전에 익숙해져 버렸기에 제대로된 종이 영어 사전을 손에 잡고 넘겨 보는게 얼마 만이던가... 잠시 감개가 무량하다.

우선 가독성이 너무 좋다. 최근의 신조어에 대한 정리. 학습자를 위한 삽화와 사진으로 보는 관련 단어 공부, 혼동하기 쉬운 뉘앙스의 차이에 따른 사용법과 유사한 어휘등에 대한 정리, 그리고 다양한 용례에 대한 것이 참으로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니 정말 훌륭하다. 요목조목 리뷰하는 것은 어찌 보면 시간 낭비일 수 있다. 체계적인 학습이 가능할 수 밖에 없는 구성이다. 이렇게 학습자들을 위한 사전이 요소요소 짜임새 있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참고하게 되는 그 레퍼런스들이 훌륭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New 옥스포드 영한사전 - 10점
Oxford University Press 지음/이퍼블릭(범문사)

예전 같으면 단순히 공부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 레퍼런스로만 생각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런 사전이 나올 수 있는 배경에 있는 영미권 사람들의 자기들의 언어에 대한 사랑과 노력이 있었음이 새삼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에 의해 갖게된 영어 라는 언어의 파괴력이 어떻게 우리를 비롯한 세계 곳곳을 물들이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묘한 위기의식도 느껴진다.

일찌기 인도 정신을 서방에 알리면서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타고르가 "우리들의 정신은 유아시절부터 영문학으로 구성됐다" 고 고백하는 글을 읽고 놀란 적이 있다. 이는 19세기의 제국주의 정책에 따른 영국의 인도 통치 방법에서 그 배경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들은 영어교육을 통해 그들을 소위 '갈색의 기독교인' 으로 키워 그들이 영국적 취향을 가지고 영국의 상품을 사용하고 영국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제 식민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게 하려 했다. 영국이나 미국보다 훨씬 먼저 인도에서 영문학이 가르쳐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시사할만하다.

언어의 역사는 사회적 통찰을 제공한다. 언어를 배운 다는 것은 그 언어의 기반인 문화와 전통에 동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인해 언어를 통해 그 언어가 사용되는 사회의 문화와 전통을 포함한 사회적 통찰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오히려 국어를 소홀히 하고 영어에만 매진하는 우리네 아이들이 우리 것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타고르가 고백했듯이 소위 교육받은 인도인들은 이미 유럽의 문화가 우월하다고 인식하고 그 의식을 체화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전통과 사회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이것이 우리들에게도 영어를 통해 그대로 답습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영어권에서는 한 단어가 어떤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그 뜻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에 대한 것을 알고자 하면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를 찾아본다. 다른 언어권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용례를 보여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언어의 사전도 소위 OED 를 따라갈 수 없다. 나는 이 OED의 존재가 바로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영어가 국제언어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19세기 중반에 이런 사전이 기획되고 20세기까지도 꾸준히 지속적으로 만들어 오고 있다는 것은 그들 문화의 힘이 대단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영국의 정치적, 경제적 힘을 나타내는 것만은 아니었다. 국가적 사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간의 힘으로만 이루어진 70여년에 이르는 이 사전의 탄생사는 당시 영국 제국의 힘보다는 그 사회에서 영어가 지니고 있던 영어의 위상과 단순히 '문자' 로서의 영어가 아닌 자신들의 문화를 이루는 기반인 '언어' 로서의 모국어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잘 드러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어의 탄생 - 10점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책과함께

그럼 우리말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흔히 우리는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문자의 측면에서만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글'은 인간이 내는 음성과 주변의 소리를 표기하기 위한 문자 이전에 바로 '우리말' 을 표기하기 위한 문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찌기 3-4살의 나이에 한글을 깨우치고 나면 즉 한글로 표기된 문자를 소리내어 말할 수 있게 될 때 부터 우리말에 대한 공부를 너무 일찌감치 놓아 버린다. 실제로 우리 언어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 조차 성인은 차치하고 아이들까지도 어려운 한국어 단어의 뜻과 발음과 용례들을 익히는데 부담을 주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 같다. 마치 필요가 없다는 듯 말이다. 어려운 영어 단어의 뜻과 발음과 용례들을 익히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을 비교해 보라.

우리 국어사전을 돌아 볼 때 감수자에 따라서 예전에는 '양주동' 사전, 최근에는 '이희승' 사전이 국어사전의 기준이 되고 있는데 이희승 선생의 사전 편찬에 대한 언급은 다음과 같다.

사전은 우선 간명하고도 광범위하여야 되며, 알찬 가운데 간편함을 잃지 말아야 하고, 복잡한 속에서 본연의 순수성을 지녀야 할 것임은 본인의 사전 편찬에 임하는 확고한 신념이다.

물론 이런 사전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쳐서는 안된다. 뜻과 용례를 통한 문화로서의 우리 언어의 문화적 가치를 알리고 공부할 수 있는 사전으로서의 역할이 너무 부족하다. 물론 그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년에 보리 국어 사전이 꽤 화제가 되었었다.

보리 국어사전 - 10점
토박이 사전 편찬실 엮음, 윤구병 감수/보리

세밀화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삽화와 이쁜 순우리말이 어우러진 멋진 책이다. 아이들의 접근성이 좋아 풍부한 어휘를 습득하게 하기에 이만한 책이 없을 것 같다. 이런 종류의 사전의 시도는 이미 영어 사전에서는 익히 있어온 것으로 늦게나마 이렇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윤구병 선생의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OED 역시 국가적인 노력보다는 개인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진 업적이었음을 기억하자.

그리고 OED와 비슷한 시도가 우리나라에서 없었던 것은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 - 전3권 - 10점
국립국어연구원 엮음/두산동아(학습지)


3권으로 이루어진 이 사전은 기존의 국어사전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부한 용례와 어원을 원전과 함께 제시하는 등 백억이 넘는 예산과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국립국어연구원이 만들어낸 백과사전급의 역작이다. 하지만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몇년전에 변경된 맞춤법 규정 특히 외래어 표기 방법 때문이다. 외래어 표기는 우리 언어 생활을 통일하기 위함이지 그네들 말을 그네들 소리대로 잘 적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현지인이 발음하는 대로 적는다는 원칙을 세워 역사적으로 정착된 우리들의 표기들을 모두 고쳐 버렸다. 실제로 신문등에서 접하는 외래어들이 생소한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제 이 표준국어 사전은 쓰레기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경제 좋아하는 분들 관점에서는 백억이 넘는 돈을 그대로 버려 버린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리 한글 정책 입안자들에게 불만이 많은데, 한글은 단순히 배우고 쉽게 쓰여야 한다는 생각의 틀에 빠져 우리 언어도 그 틀에 재단하는 듯한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더구나 천한(?) 우리말 보다는 존중받아야할(?) 외국어를 많이 배려하는 입장을 고수한다. 영어의 수많은 단어의 뉘앙스와 그 쓰임새에 대해서는 기를 쓰고 암기하며 사용하고 뿌듯해 하면서도 정작 우리말에 대해서는 가능한 단순하게 만들고 비슷한 뜻을 지닌 단어나 헷갈리는 표기들은 통폐합하여 정리하려고까지 한다.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우리말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최신의 맞춤법 규정이 포함되어 있는 '아래하 한글'의 경우를 보면 '일찍이', '너머서다' 등은 틀린 맞춤법으로 나온다. '일찍이' 와 '일찌기', 그리고 '넘어서다' 와 '너머서다' 는 분명히 다른 용례를 지닌 역사가 있는 말로 풍부한 표현을 가진 우리말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표준 맞춤법에서는 통합되어 버려서 더 이상 구분하면서 사용할 필요가 없다. (참 편리해졌다... )

이렇게 단순화하고 통합하는 것이 '경제적' 으로는 이점이 있을지 몰라도 우리 언어의 위상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정교하고 풍부한 의미를 갖고 이는 우리의 단어들이 사라져간다. 한자어나 주변 동양권에서 영향을 받은 단어들은 특히 기피 대상이다. 한자어임에도 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한자를 병기하는 대신에 구미권의 언어가 괄호 안에 포함되어 보충설명을 한다. 이는 우리의 사회적인 가치관이 어찌 변해가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사전이라는 것은 특정 언어의 단어의 쓰임과 의미를 전달해주고자 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국어사전 역시 그런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저들이 갖고 있는 언어에 대한 문화적 인식과 그의 부산물로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사전들이 바로 '영어' 라는 언어의 힘이라고 볼 때, 우리도 늦기 전에 우리 언어에 대한 자부심과 그를 통한 문화적인 사업들이 꾸준이 이루어지기를 바래본다.

렛츠리뷰

덧글

  • 오른손 2009/09/30 17:00 # 삭제 답글

    멋진 글입니다. 저도 그런 점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 다음엇지 2009/10/05 10:04 #

    국가에 기대지만 말고 민간적인 의식개혁이 수반되어야 겠죠. 방문 감사드려요.
댓글 입력 영역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