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수학을 싫어하고 수학 서적은 전혀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언어만큼 기호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호 문맹" 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또 수학을 가르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최근 수학을 보다 잘 가르치기 위한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다행이다.
부분적으로는 이런 문제도 있다. 수학은 하나의 언어이며, 다른 언어처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언어를 두 번 배운다. 먼저 말하기를 배우고, 그 다음에 읽기를 배운다. 다행히도 수학은 씌여지기만 하므로 한 번만 배우면 된다.
씌여진 언어른 배운다는 것은 기초적인 읽기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읽기 수업을 하는 것은 책에 있는 기호를 인식하는 법을 배우고, 이 기호들간의 연관성을 암기하는 것이다. 책을 잘 읽는 사람이라도 가끔 이런 기초적인 읽기를 한다.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 사전을 찾아보는 것처럼 라이다. 문맥이 잘 파악되지 않을 때도 기초적인 읽기 수준에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비로소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읽기를 하게 된다.
수학도 언어이므로 어휘, 문법, 구문과 같은 것들이 있고 이를 배워야 한다. 어떤 기호와 기호들간의 연관성을 암기해야 한다. 그런데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문제도 다르다. 그렇지만 '이론적으로' 영어나, 불어, 독어를 배울 때보다 어렵지 않다. 사실 기초적인 단계에서는 더 쉬울 수도 있다.
언어는 상호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주제에 대한 인간들의 의사소통의 매개체이다. 평범한 대화의 주제는 주로 감정과 연관된 것들이 많다. 이런 주제는 두 사람 사이에 '완전한' 이해가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서로 다른 두 사람도 전기회로나, 이등변 삼각형, 삼난논법과 같이, 감정과 떼어 놓은 제3의 내용은 이해할 수 있다. 감정적인 의미가 개입된다면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수학은 이런 문제를 피할 수 있다. 수학 용어나 명제, 방정식 등에는 감정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 수학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얼마나 이해하기 쉬운지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를 알아보자. 조금 고생스러우면 어떤가? 유클리드의 <기하학 입문>은 이제까지 씌여진 책 중 가장 아름답고 알기 쉽다. 예를 들면 제 1권에 나오는 다섯 가지 명제를 살펴 보자. 기초 기하학에서 명제는 두 종류가 있는데, (1) 도형의 작도 문제의 진술, (2) 도형과 다른 부분 사이의 관계에 대한 법칙들이다. 작도는 직접 해봐야 할 문제이고, 법칙은 증명해봐야 할 문제이다. 유클리드가 작도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해야 할 것을 끝마쳤음(Quod erat faciendum)"을 뜻하는 Q.E.F. 법칙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증명해야 할 것을 끝마쳤음(Quod erat demonstrandum)"을 뜻하는 Q.E.D. 를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기하학 입문에 처음 나오는 세 가지 명제는 모두 작도와 관련된 것이다. 왜 그럴까? 법칙을 증명하는데 그 작도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네번째 명제에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지만 법칙과 관련된 다섯번째 명제에서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 명제에서 이등변 삼각형의 밑각의 크기가 같다고 하는데, 이는 명제3을 이용한 것이다. 거꾸로 명제3은 명제2의 작도법을 바탕으로 하고, 명제2는 명제1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작도법은 명제5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도는 또 필요조건과 비슷해서 작도나 필요조건 모두 기하학을 증명하는데 사용되어 진다. 필요조건은 그 가능성을 '가정' 할 수 있는 것이고, 기하학 명제는 그 가능성을 '증명'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명제 20에서 정의하고 있는 양변이 똑같은 삼각형이 실제하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 명제1은 별다른 문제없이 직선이나 원과 같은 것들이 있다는 '가정' 으로부터 이등변 삼각형과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등변 삼각형의 밑각이 똑같다는 명제5로 되돌아가 보자. 그 이전의 명제들과 가정들을 한 단계씩 언급하는 가운데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면, 이제 그 명제는 증명된 것이다. 즉, '어떠한 것이 옳다'면(이등변 삼각형에 대한 가정들), 그리고 거기에 첨가된 사실들도 유효하다면(정의, 필요조건, 앞선 명제들), '그 밖의 다른 것들도 옳다'는 결론을 보여주는 거이다. 그 명제는 '만일-그렇다면'의 관계를 주장하는 것이지, 가정의 진실성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결론의 진실성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가설과 결론의 이러한 관계는 명제가 증명되기 전까지는 참되다고 볼 수 없다. 증명되어야 할 것은 정확히 그 관계의 진실성이지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이를 아름답다고 이야기한다면 과장일까? 그렇지 않다. '정말 제한되어 있는 문제에 대한 정말 논리적인 해설' 이다. 해설의 명쾌함과 문제의 제한되어 있는 본질 모두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일상적인 대화는 아무리 훌륭한 철학적 대화라 해도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제한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철학적 문제의 경우 이런 식으로 논리를 명쾌하게 사용하기도 어렵다.
여기서 잠깐 살펴 본 명제5와 간단한 삼단논법의 차이를 살펴보자.
동물은 모두 죽는다
인간은 모두 동물이다
따라서 인간은 모두 죽는다
동물과 사람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동물은 죽는다는 사실을 가정하면서, 이등변 삼각형의 각에 대한 결론처럼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문제는 동물과 인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하는 어떤 것, 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을 가정했다. 여기서는 수학에서와 달리 이 가정을 살펴봐야 한다. 유클리드의 명제는 이런 문제가 없다. 즉, 이등변 삼각형과 같은 것이 있는지 없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일' 이러 저러한 방식으로 정의되어 있다면, '그렇다면' 뒤이어 두 밑각이 같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도 있을 수 없다. 지금부터 영원히.
기초적인 수학 서적은 자신의 생각보다 더 잘 읽을 수 있다.
- [How to Read Books], Mortimer J. Adler
부분적으로는 이런 문제도 있다. 수학은 하나의 언어이며, 다른 언어처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언어를 두 번 배운다. 먼저 말하기를 배우고, 그 다음에 읽기를 배운다. 다행히도 수학은 씌여지기만 하므로 한 번만 배우면 된다.
씌여진 언어른 배운다는 것은 기초적인 읽기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읽기 수업을 하는 것은 책에 있는 기호를 인식하는 법을 배우고, 이 기호들간의 연관성을 암기하는 것이다. 책을 잘 읽는 사람이라도 가끔 이런 기초적인 읽기를 한다.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 사전을 찾아보는 것처럼 라이다. 문맥이 잘 파악되지 않을 때도 기초적인 읽기 수준에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비로소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읽기를 하게 된다.
수학도 언어이므로 어휘, 문법, 구문과 같은 것들이 있고 이를 배워야 한다. 어떤 기호와 기호들간의 연관성을 암기해야 한다. 그런데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문제도 다르다. 그렇지만 '이론적으로' 영어나, 불어, 독어를 배울 때보다 어렵지 않다. 사실 기초적인 단계에서는 더 쉬울 수도 있다.
언어는 상호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주제에 대한 인간들의 의사소통의 매개체이다. 평범한 대화의 주제는 주로 감정과 연관된 것들이 많다. 이런 주제는 두 사람 사이에 '완전한' 이해가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서로 다른 두 사람도 전기회로나, 이등변 삼각형, 삼난논법과 같이, 감정과 떼어 놓은 제3의 내용은 이해할 수 있다. 감정적인 의미가 개입된다면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수학은 이런 문제를 피할 수 있다. 수학 용어나 명제, 방정식 등에는 감정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 수학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얼마나 이해하기 쉬운지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를 알아보자. 조금 고생스러우면 어떤가? 유클리드의 <기하학 입문>은 이제까지 씌여진 책 중 가장 아름답고 알기 쉽다. 예를 들면 제 1권에 나오는 다섯 가지 명제를 살펴 보자. 기초 기하학에서 명제는 두 종류가 있는데, (1) 도형의 작도 문제의 진술, (2) 도형과 다른 부분 사이의 관계에 대한 법칙들이다. 작도는 직접 해봐야 할 문제이고, 법칙은 증명해봐야 할 문제이다. 유클리드가 작도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해야 할 것을 끝마쳤음(Quod erat faciendum)"을 뜻하는 Q.E.F. 법칙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증명해야 할 것을 끝마쳤음(Quod erat demonstrandum)"을 뜻하는 Q.E.D. 를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기하학 입문에 처음 나오는 세 가지 명제는 모두 작도와 관련된 것이다. 왜 그럴까? 법칙을 증명하는데 그 작도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네번째 명제에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지만 법칙과 관련된 다섯번째 명제에서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 명제에서 이등변 삼각형의 밑각의 크기가 같다고 하는데, 이는 명제3을 이용한 것이다. 거꾸로 명제3은 명제2의 작도법을 바탕으로 하고, 명제2는 명제1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작도법은 명제5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도는 또 필요조건과 비슷해서 작도나 필요조건 모두 기하학을 증명하는데 사용되어 진다. 필요조건은 그 가능성을 '가정' 할 수 있는 것이고, 기하학 명제는 그 가능성을 '증명'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명제 20에서 정의하고 있는 양변이 똑같은 삼각형이 실제하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 명제1은 별다른 문제없이 직선이나 원과 같은 것들이 있다는 '가정' 으로부터 이등변 삼각형과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등변 삼각형의 밑각이 똑같다는 명제5로 되돌아가 보자. 그 이전의 명제들과 가정들을 한 단계씩 언급하는 가운데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면, 이제 그 명제는 증명된 것이다. 즉, '어떠한 것이 옳다'면(이등변 삼각형에 대한 가정들), 그리고 거기에 첨가된 사실들도 유효하다면(정의, 필요조건, 앞선 명제들), '그 밖의 다른 것들도 옳다'는 결론을 보여주는 거이다. 그 명제는 '만일-그렇다면'의 관계를 주장하는 것이지, 가정의 진실성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결론의 진실성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가설과 결론의 이러한 관계는 명제가 증명되기 전까지는 참되다고 볼 수 없다. 증명되어야 할 것은 정확히 그 관계의 진실성이지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이를 아름답다고 이야기한다면 과장일까? 그렇지 않다. '정말 제한되어 있는 문제에 대한 정말 논리적인 해설' 이다. 해설의 명쾌함과 문제의 제한되어 있는 본질 모두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일상적인 대화는 아무리 훌륭한 철학적 대화라 해도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제한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철학적 문제의 경우 이런 식으로 논리를 명쾌하게 사용하기도 어렵다.
여기서 잠깐 살펴 본 명제5와 간단한 삼단논법의 차이를 살펴보자.
동물은 모두 죽는다
인간은 모두 동물이다
따라서 인간은 모두 죽는다
동물과 사람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동물은 죽는다는 사실을 가정하면서, 이등변 삼각형의 각에 대한 결론처럼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문제는 동물과 인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하는 어떤 것, 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을 가정했다. 여기서는 수학에서와 달리 이 가정을 살펴봐야 한다. 유클리드의 명제는 이런 문제가 없다. 즉, 이등변 삼각형과 같은 것이 있는지 없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일' 이러 저러한 방식으로 정의되어 있다면, '그렇다면' 뒤이어 두 밑각이 같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도 있을 수 없다. 지금부터 영원히.
기초적인 수학 서적은 자신의 생각보다 더 잘 읽을 수 있다.
- [How to Read Books], Mortimer J. Ad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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