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모드 몽고메리 (Lucy Maud Montgomery) by 다음엇지

루시 모드 몽고메리 (Lucy Maud Montgomery)

글 : FM 가정음악, '마티나타(아침노래)'
루시 모드 몽고메리편 (2007.12.31 ~ 2008. 1.4)
녹취/정리 : 다음엇지

주근깨가 두드러지는 얼굴에 빨강색의 머리결을 한 별난 아이, 예쁘지도 않은 데다가 고아원에서 왔으며 실수도 많고 수다스러운 아이, 그런데도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빨강머리의 소녀, 앤.

다들 한번 쯤은 이 빨강머리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책이나 만화 혹은 애니메이션을 읽거나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워낙 사랑받는 소설이어서 처음 나왔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상관없이 끝없이 그렇게 읽히고 있습니다. 또 만화로 애니메이션으로 영화로 반복해서 제작되고 있지요. 특히 소녀인 '앤'을 주인공으로 한 첫번째 편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한테도 열렬히 읽혀 왔습니다. 전세계 전연령층에 사랑을 받는 소설이고 그 주인공인 거죠. 그 중에는 소설의 애이본리 마을에 나오는 앤의 집으로 실제로 아직도 거기 앤이 살아 있는 듯 편지를 써 보내는 열렬 독자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작가인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살았던 집과 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행렬도 지금까지 끊임이 없다고 하구요. 정말이지 앤이란 존재는 실재로 옆에서 보았던 소녀 적의 친구 같습니다. 추억을 뒤지면 가장 먼저 생각 날 친구 이름 같죠. 어떤 분은 빨강머리 앤이 없었다면 어린 시절 주위 환경 때문에 받았던 상처들이나 내면적인 성장통들이 훨씬 크고 깊었을 거라고도 말합니다. 빨강 머리 앤이 있었기 때문에 사춘기를 그나마 별탈없이 넘기고 사람들과 세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도 있습니다. 그런 식의 도움들까지 숱하게 주면서 <빨강머리 앤>은 자그만치 1억부 이상이 팔렸습니다. 엄청난 숫자의 베스트 셀러이자 스테디 셀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창작품들은 그 위대함이 불가능해 보이는 최악의 조건이나 대우 속에서 태어나곤 하죠. <빨강머리 앤> 역시 그러했습니다. 처음엔 출판사들의 반대로 책 나오는 게 거의 불가능해 보였죠. 그러다 간신히 출판해 줄 곳을 찾았던 <빨강머리 앤>의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 그가 곧 빨강머리 앤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그의 삶이 있었죠.

루시 모드 몽고메리(Lucy Maud Montgomery)는 1874년 캐나다의 세인트 로렌스만 남부의 프린스 에드워드 섬 클리프턴(Clifton, 현재는 New London)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훗날 자서전에서 자신의 부모님과 집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My father was Hugh John Montgomery; my mother was Clara Woolner Macneill. So I come of Scotch ancestry, with a dash of English from several "grands" and "greats." There were many traditions and tales on both sides of the family, to which, as a child, I listened with delight while my elders talked them over around winter firesides. The romance of them was in my blood; I thrilled to the lure of adventure which had led my forefathers westward from the Old Land.

                                                                   - The Alpine Path: The Story of My Career

나의 아버지 이름은 휴 존 몽고메리, 어머니 이름은 클라라 울너 맥닐입니다. 그 이름으로도 알 수 있듯이 나의 부모는 스코틀랜드계로 잉글랜드의 피도 섞여 있습니다. 어머니 쪽에도 아버지 쪽에도 저마다 오랜 전통을 가진 옛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소녀 시절 나는 난로가에 앉아 눈을 빛내며 어른들의 그 옛이야기에 귀 기울이곤 했습니다. 내 조상들이 경험한 로맨스가 내 핏줄 속에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겪은 모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몸이 오싹했습니다.

그러나 소박한 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반달 모양의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태어난 루시가 채 두살이 되기도 전인 1876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루시는 캐번디시에서 우체국을 하는 외가에 맡겨 졌죠. 루시의 글쓰기 재능은 일찍부터 나타났습니다. 캐번디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열살에 벌써 <가을> 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죠. 1890년인 16살 땐 <루퍼스 고제에 대하여> 라는 시가 샬롯 타운에서 발행되는 '데일리 퍼틀리어 신문(Daily Patriot)'에 처음 실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끝없는 일기쓰기와 자주 수첩을 열어 메모하는 습관 그리고 더러 시를 쓰는 것을 제외하면 루시의 학창 시절은 평범했습니다. 프린스 오브 웨일즈 대학(Prince of Wales college)과 핼리팩스의 댈하우지(Dalhousie) 대학 시절 역시 그랬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루시는 처음에는 교사가 되어 학교 교단에 섰지요. 하지만 24살 때 우체국을 하던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외할머니 곁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대신 우체국을 경영하는 외할머니를 도우면서 틈틈히 글을 쓰고 발표하죠. 루시는 그전부터도 이미 신문과 잡지에 글을 발표하면서 얼만큼의 이름을 얻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할 작품은 없었죠.

루시 몽고메리가 다시 외할머니를 떠나 핼리팩스로 간 것은 3년 뒤였습니다. 핼리팩스에서 루시는 데일리 에코(Daily Echo)라는 석간 신문의 기자가 되었지요. 그렇게 지내던 루시는 서른살이던 어느 봄날 우연히 자신의 수첩에 적혀 있던 몇 줄의 메모를 발견합니다.

어떤 농부가 양자를 삼기 위해 사내아이를 고아원에 부탁했는데 일이 잘못되어 여자아이가 오게 되었다.

그대로 소설 <빨강머리 앤> 이야기의 실마리가 되는 메모였죠. 하지만 실제 있었거나 들었던 이야기를 옮겨 놓은 메모가 아니었습니다. 이웃집의 독신 남녀 집에 와 있는 어린 조카딸을 보고는 문득 저 애가 고아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한 메모였습니다. 그러니까 <빨강머리 앤>은 처음부터 루시의 소설적인 상상이 가미된 두 세줄의 메모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 메모에다 자신의 살아온 내력을 보태서 루시는 그 때부터 <빨강머리 앤>을 쓰기 시작했죠. 애이본리 마을의 초록색 지붕 집에서 사는 매튜와 머릴라라는 이름의 독신 남매, 농사일을 도와 줄 사내 아이를 입양시키고자 했던 그 초록색 지붕 집에 잘못 보내진 앤 셜리, 얼굴에는 주근깨가 있고 머리는 붉은 머리를 한 예쁘지도 않은데다가 말도 많은 앤 셜리는 달가와 하지 않으면서 돌려보낼 생각을 하는 머릴라 남매, 하지만 어쨌든 머릴라 집에 머물며 다이아나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자신의 머리를 '홍당무' 라고 놀리는 길버트에게 귀여운 앙갚음을 해주며 모두의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하는 '빨강머리 앤'. 그렇게 앤의 어린 시절을 그린 소설 <그린 게이블즈의 앤(Anne of Green Gables)>는 1년여 만에 완성됬습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완성된 소설을 출간하고자 했죠. 하지만 원고를 받은 출판사마다 저마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루시는 실망한 채 원고를 다락방으로 치워 버렸죠. 소설 <빨강머리 앤>이 영영 묻혀 버릴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빛날만한 것은 때가 늦든 빠르든 언제든 빛나기 마련인 것이겠죠. 3년이나 지난 어느날 다락방에 올라갔던 루시 몽고메리는 그 원고를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그 먼지덮인 원고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 본 이는 바로 루시 모드 본인이었습니다. 모든 출판사로부터 다 거절당해서 다락방에 버려 두었던 작품, 3년만에 다락방에서 다시 대한 그 거절의 상처가 즐거울리만은 없었곘죠. 하지만 원고를 다시 읽어 나가던 루시는 시간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다시금 용기가 생겼죠. 아니 다시금 용기를 냈습니다. 루시는 다시 원고를 미국 보스턴의 한 출판사로 보냈습니다. 그 출판사는 얼마 후 500 파운드에 원고를 사겠다는 회답을 보내왔죠.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는 이가 한 사람만 있어도 예술가와 작품은 살아남게 되는 거겠죠. 살아남다 뿐인가요.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전인 1908년에 세상에 나온 그 책 <그린게이블즈의 앤(Anne of Green Gables)> 빨강머리 앤의 첫권은 삽시간에 캐나다와 미국 전역의 독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사람들은 엉뚱한 상상력을 가진 꼬마 몽상가이면서 수다쟁이에 말괄량이고 실수투성이지만 그 어떤 어른보다 따뜻하고 정이 많은 빨강머리에 주끈깨투성이인 소녀이자 인생에 더 이상 기대나 희망이라고는 없는 중년의 독신 남매 매튜와 머릴라를 웃게 만들고 괴팍하고 엄격한 이웃의 배리 할머니에게조차 사랑을 받아내는 앤에게 열광적인 사랑과 지지를 보냈습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앤과 함께 그야말로 하루 아침에 캐나다와 미국 최고의 유명 인사가 됬죠.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은 빨강머리 앤을 가르켜 '아동문학 사상 최고의 귀여운 아가씨' 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비단 아메리카 대륙만이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로 번역되어 나간 <빨강머리 앤>은 국적에 상관없이 전세계 어린 아이들로부터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열렬한 사랑과 갈채를 받았습니다. 모두가 그린 게이블즈의 앤 이야기를 이후의 앤과 길버트 사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계속 써달라는 주문이 폭발적으로 쇄도했죠. 지금으로 치자면 헤리 포터 이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루시 몽고메리는 그 열광에 힘입어 잇따라 앤의 20대를 담은 후속편인 <애본리의 앤(Anne of Avonlea)>과 <섬의 앤(Anne of Island)>등을 써냈습니다.

그러던 중 1911년 친어머니나 다름없었떤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죠. 루시는 외할머니가 하시던 우체국을 정리하고 목사인 이완 맥도날드와 결혼했습니다. 이완 맥도날드와는 이미 몇년 전 약혼을 했던 사이였습니다. 그 해 루시의 나이는 37살, 맥도날드의 나이는 41살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였죠 늦게서야 세상에 재능이 알려지고 가정도 늦게 꾸렸던 거죠. (참고 : 루시 모드 몽고메리 반란을 꿈꾸다 - The Blue Castle)

<빨강머리 앤>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 뛰는 부분을 길버트가 앤에게 첫번째 청혼을 했다가 거절당한 뒤 2년 뒤에 다시 청혼을 하는 장면을 들곤 합니다.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니 앤?'
'당연하지 누구나 그렇잖아 우리가 꿈을 다 이룬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꺼야. 이룰 꿈이 없다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일테니까. 과꽃과 고사리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데 향기를 냄새 맡을 뿐만 아니라 눈으로도 볼 수 있으면 좋겠어 틀림없이 굉장히 아름다울꺼야.'

이런 앤의 말에 길버트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내게도 꿈이 있어.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때가 있기도 했지만 계속 그 꿈을 가지고 있지. 나는 벽난로가 있고 고양이와 개가 있고 친구들의 발자국 소리와 네가 있는 가정을 꿈꿔.'

이 청혼에 앤은 행복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을 느낍니다.

빨강머리 앤에는 작가인 루시 몽고메리의 인생이 많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니 루시 몽고메리가 받은 청혼도 그렇게 감동적일지도 모르겠어요.
루시는 37살에 41살인 목사 이완 맥도널드와 결혼한 후 온타리오주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계속 글을 쓰는 작가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로 또한 목사 부인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죠. 목사 부인으로서의 삶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루시 몽고메리는 신실한 마음으로 주어진 자리와 역할을 성실하게 해냈습니다. 그러는 동안 빨강머리 앤도 모두 9권으로 정리됐습니다. 그리고 책만이 아니라 영화로 연극으로 TV 시리즈물로 수많은 매체를 통해 더 열광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재창작되어 왔죠. 1935년에는 <빨강머리 앤>이 온 세계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에게 심어 준 희망과 꿈이 인정되어 60대의 몽고메리에게 영국 학사원과 캐나다 프레스 클럽 그리고 프랑스 예술원 등에서 줄줄이 회원 자격과 상을 수여했죠. 그로부터 7년 뒤인 1942년 몽고메리는 세계 대전의 포연이 한창인 속에서 캐나다 토론토에서 6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남편도 이듬해 세상을 떠나 두 사람은 1년간의 이별 후 나란히 묻혔습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빨강머리 앤> 속의 앤이 그랬듯이 부모를 일찍 여의었죠. 어머니는 세상을 일찍 떠났고 아버지는 두 살인 앤을 두고 다른 곳으로 가 새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선지 외조부 밑에서 자란 몽고메리는 고아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했습니다. <빨강머리 앤> 이전에 쓴 작품들에는 고아들이 자주 등장할 뿐더러 한 작품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하기도 하죠.

마음도 몸도 지갑도 넉넉한 장미빛 어른이 되면 기차와 여객선에서 마주치는 모든 고아 소년 소녀들에게 미소와 응원을 아끼지 말아야지.

그런가 하면 그녀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언제나 그리워하면서 살았습니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은 평화로운 농가와 잘 가꾸어진 밭, 풍요로운 과수원을 가진 섬이죠. 빙하가 떠도는 잿빛 바다의 겨울과 사과꽃 만발한 봄, 불볕 더위를 식혀 주는 초록 미풍과 화려한 가을 단풍이 눈부신 곳입니다. 그러니 몽고메리만 그리워 한 것이 아닙니다. 몽고메리가 탄생시킨 '앤'을 만난 모든 독자들에게 앤이 있고 몽고메리의 생가가 있는 프린스 에드워드 섬은 '꿈의 여행지' 입니다. 여행을 직접 가지는 못해도 그곳에 있는 것으로 그려진 앤의 집 초록색 지붕을 한 'Green Gables'로 아직도 편지를 보내는 열렬 독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약한 존재를 사랑하고 자연으로 가득한 시골 마을을 사랑했던 루시 몽고메리, 그녀가 있었기에 그리고 그녀가 앤이라는 한 빨강머리 소녀를 만들어 냈기에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는지 그에 대해 깊이 감사합니다.

덧글

  • 로맨티스트 2008/01/08 09:23 # 삭제 답글

    감사합니다.
  • nadia729 2008/06/15 22:48 # 삭제 답글

    너무 좋아요..

    빨간머리앤...

    이렇게 정리를 잘해놓으시다니............

    정말 좋네요...

    앤을 보면서 늘 작가가 느껴지곤 했었는데..
  • 다음엇지 2008/06/17 07:46 #

    아무래도 자신의 첫 소설은 자신의 이야기가 어떻게든 담기는 법이죠. 방문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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