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hapsody] 2. Alto Rhapsody - Brahms by 다음엇지

브람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작곡가였습니다. 그런 브람스와 함께 떠오르는 여인은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 슈만 비크 죠.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사랑의 감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제 블로그를 봐 오셨던 분들에게는 군말에 불과하겠죠. 슈만을 찾아 갔을 때 브람스는 스무살 약관의 청년이었고 이후 슈만의 가족과는 오래토록 친분을 나누게 됩니다.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한 뒤 정신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리고 슈만이 결국 정신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 클라라 옆에서 그녀를 지켜주던 사람이 바로 브람스였죠.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클라라에 대한 브람스의 사랑은 '우정' 으로 바뀌고 마는데요. 그 뒤에도 클라라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들의 우정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런 브람스였지만 다른 여성들에게도 물론 사랑을 느꼈는데요. 아가테 폰 지볼트(Agathe von Siebold) 라는 여인과 약혼을 하기도 하고 이후 다른 여성들에게 연정을 품기도 합니다. 또 브람스는 슈만과 클라라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딸인 율리에게도 사랑을 가지게 되는데요. 브람스의 <알토 랩소디>는 바로 이 율리에 대한 사랑에 의해 탄생된 작품입니다.
율리 슈만(Julie Schumann : 1845-1872)

전해져 오는 율리의 사진을 보면 그녀가 상당한 미인임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율리를 본 사람은 누구나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째딸들은 이쁘다는 속설이 그대로 적용이 되는군요. 아무튼 브람스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율리는 백작과 결혼을 해 버렸고 이로 인해 브람스는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를 듣고 태도가 변한 브람스를 보고 당황한 클라라는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브람스가 아주 달라졌다. 집에 거의 오지도 않고 어쩌다 왔을 때에도 묻는 말만 간단히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물론 브람스는 항상 율리를 그런식으로 대하면서 가깝게 지냈지만 말이다. 브람스가 진정 율리를 사랑했을까? 하지만 그는 율리와 결혼하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율리도 브람스를 각별하게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율리는 백작에게 시집갔고 상심한 마음을 달랠 수 없었던 브람스는 그 마음을 <알토 랩소디>에 담게 됩니다. 출판사에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슈만의 백작부인을 위해 신부의 노래를 지었소. 하지만 원망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썼소. 화를 참을 수 없어 썼다오.

어느날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이 작품을 가지고 찾아오게 됩니다. 그날 클라라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습니다.

요하네스는 훌륭한 작품 하나를 가져왔다...괴테의 「겨울의 하르츠 여행」이란 시를 텍스트로 쓴 알토, 남성합창,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이었다. 그는 그것을 자기 신부의 노래라고 불렀다. 그 시와 음악에 스민 깊은 고통을 들으며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진한 감동을 받았다. 작품의 상당 부분은 브람스 자신의 마음의 고통을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솔직하게 한번만 말해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이 작품에서 그는 12연으로 된 괴테의 시 <겨울의 하르츠 여행(Harzreise im Winter)> 중간 부분의 3 연을 선택해서 곡을 붙였습니다.
시는 이렇습니다.

Aber abseits wer ist’s? 그러나 저 멀리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Ins Gebüsch verliert sich der Pfad, 그가 걸어가는 흔적은 덤불 속에 가려 있고
hinter ihm schlagen 지나고 나면
Die Sträuche zusammen, 덤불은 다시 엉켜 붙고
das Gras steht wieder auf, 풀은 다시 일어나 무성해지며
die Öde verschlingt ihn. 황야는 그를 삼켜 버린다.

Ach, wer heilet die Schmerzen 아, 누가 이 고통을 치유해 줄 것인가
des, dem Balsam zu Gift ward? 향유가 독으로 변해 버린 그 고통을?
Der sich Menschenhass aus der Fülle der Liebe trank? 사랑의 샘에서 인간 증오의 물을 마셔 버린 그
Erst verachtet, nun ein Verächter, 처음 멸시 당하다가 이제는 멸시하는 사람이 된
zehrt er heimlich auf 그는 아무도 모르게
seinen eigen Wert 자신의 가치를 소모시킨다
in ungenügender Selbstsucht. 계속되는 이기심으로.

Ist auf deinem Psalter, 당신의 시편에,
Vater der Liebe, ein Ton seinem Ohre vernehmlich, 사랑의 아버지시여, 그가 들을 수 있는 하나의 소리가 있다면,
so erquicke sein Herz! 그것으로 그의 마음을 위로하소서!
öffne den umwölkten Blick 그의 흐려진 시야를 맑게 하시어
Über die tausend Quellen
neben dem Durstenden
in der Wüste! 사막에서 목말라하는 그에게 수천의 샘물을 발견하게 하소서!

1부 첫번째 연을 가사로하는 부분은 세상을 원망하고 남을 비방하며 자신을 학대하는 청년 주인공을 둘러싼 정서가 담겨 있습니다. 실연한 그의 심경을 잘 보여주는 부분인데요. 섬세하고 세련된 감정 처리와 그 속에서도 진실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조용히 심연으로 침잠해 가는 신중한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시작부터 강한 fz(스뽀르짠도)의 저음 현들에 의해 심각한 분위기의 선율이 뭔가 심각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조성하구요. 그 위에 고음현들은 트레몰로로 진행하면서 우울한 가운데 불암감과 혼란한 마음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진행하면서 갑자기 흐트러지는 모호한 조성진행은 방황하면서 불안해 하는 심경을 고조시킵니다. 더구나 강하고 약하고 강하고 약한 대비를 계속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더 합니다. 조금 분위기가 안정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알토가 읊조립니다. "그러나.. 저 멀리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 하고 말이죠.

2부가 되면 템포가 다시 빨라집니다. 바로 알토의 목소리가 나오는데요. 역시 저음현은 그 심각한 분위기를 계속 조성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저주와 원망으로 바뀌면서 사용되는 싱코페이션 또한 절묘합니다. 조성도 단조로 바뀝니다. 그렇게 진행되던 내용은 그 원인이 자신의 이기심임을 깨닫게 됩니다. 미운 것은 실연이지 사랑하던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죠.

자 3부가 되면, 분위기가 좀 밝아집니다. 이제 남성합창이 등장하는데 알토 노래의 배경이 됩니다. 조용한 현의 피치카토와 합창 위로 흐르는 알토의 목소리는 바로 '기도' 입니다. 반주는 그 '기도'에 알맞은 잔잔한 선율과 반복구로 구원과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율리는 3년 후 결핵때문이었는지 산후 조리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27살의 젊은 나이로 둘째를 출산한 직후에 사망합니다. 브람스가 이 소식을 듣고는 어떠했을까요.

《 Brahms Alto Rhapsody, Op. 53 》 (15'53")

콘트랄토) Kathleen Ferrier
남성합창) London Philharmonic
지휘) Clemens Krauss
연주)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Recorded: 18-19 December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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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intermezzo 2007/08/28 12:31 # 답글

    그런데 브람스가 율리에게 청혼했다면...클라라가 그걸 받아들였을까요?
  • BbasyLover 2007/08/28 13:07 # 답글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빠르게 마음을 고백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일화입니다(...)
  • 로맨티스트 2007/08/28 13:32 # 삭제 답글

    산후조리의 모든 것, 로맨티스트에게 물어보세요!
    http://anne.on.ly 빨강머리 앤 산후조리원과 함께합니다! 
  • 다음엇지 2007/08/28 13:50 # 답글

    intermezzo/ 고민은 되었겠지만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이후 음악 인생과 음악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네요.

    BbasyLover/ 사랑은 타이밍입니다!

    로맨티스트/ ^^ 여전하세요~~ 하하..
  • 2007/08/28 13:54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수유 2007/08/28 13:57 # 답글

    그참 바흐 듣다가.. 알토 랩소디를 듣는 오후가 되겠습니다.^^
  • 다음엇지 2007/08/28 15:06 # 답글

    비공개님/ 넵, 지적 감사합니다. 인용글들의 출처는 주로 라디오에서 옛날부터 녹취해서 적어놓은 노트에서 옮긴 것이거나 정확한 출처를 모르는 경우도 있고, 다른 것들은 국내에 출간된 전기나 웹사이트등에서 번역한 것입니다.
  • 다음엇지 2007/08/28 15:07 # 답글

    수유/ 우울하긴 해도, 확실히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는 가사를 모르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하더군요. 느낌의 세계에 언어적인 의미가 더해지니까 엉뚱한 방향으로 튀기도 한다니까요 T T)
  • 수유 2007/08/28 15:24 # 답글

    아주 오래전 lp 로 브람스 3번과 함께 즐겨 듣던 곡고입니다. 이른바 "겨울 하르츠 여행"...이 따끈따끈한 여름에 말이지요..그러나저나 음원 계속 올리시니 저도 힘입어 올려야겠어요
    음악이 없으니 영...쓸쓸해져서 말이지요^^
  • 그림자놀이 2007/08/29 08:36 # 답글

    예전에 저도 이 이야기를 블로그에 한 적이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참 애착을 가지고 있는 곡입니다. ^^

    위에 수유님이 듣던 lp는 혹시 뵘 아저씨 연주 아닌가요? 저도 그 lp로 처음 들었었던 기억이 있어서요...
  • 수유 2007/08/29 16:05 # 답글

    그림자놀이 님, 찾아봐야겠지만 아마 그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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