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에 별을 쳐다볼 때 내세가 있었으면 해 보기도 한다.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 없는 사람이다
- 수필, '晩年' 중에서...
- 수필, '晩年' 중에서...
함박꽃마냥 해맑은 그 웃음으로 이렇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어르신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안심이 되던 금아 선생님이 좋아하시던 신록의 오월에 영면하셨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활짝 웃어주실 것만 같던 분의 부음을 듣게 되니, '아... 가셨구나' 라는 작은 감탄사를 내뱉고는 그 다음을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일단은 서가에서 중학교 1학년때 교과서에서 '나의 사랑하는 생활' 을 읽고 받은 감동으로 구입했던 누렇게 종이가 바랜 범우사의 [수필]을 꺼내 들었습니다. 피어오르는 먼지와 함께 나는 오래된 종이 냄새, 그렇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여백이 많은 짧고 단촐한 문장들이 마치 선생님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한장 한장 넘기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에 띄우는 작은 미소라던가 가슴에서 울컥하는 느낌은 여전하더군요. 중학교에 올라와서 처음 가슴에 와닿았던 글은 바로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나의 사랑하는 생활' 이었습니다. 새삼 주변의 작은 일상들에 감사하고 감동하는 삶을 일깨워 주셔서 <빨강머리 앤>과의 접점을 갖게 된 것이나 고전 음악에로의 끊임없는 호기심등을 선생님께 빚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운 얼굴을 욕망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 수필, '나의 사랑하는 생활' 중에서...
고운 얼굴을 욕망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 수필, '나의 사랑하는 생활' 중에서...
琴兒(거문고 소년)라는 호는 춘원 이광수 선생이 지어주신 것이라고 하죠. 10살에 여읜 어머님이 거문고를 잘 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항상 어머니의 아이로 맑고 순수함을 간직하고 살아라'는 의미로 지어주셨답니다. 저는 이렇게 이쁘고 아름다운 호를 본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1910년 생이십니다. 알려져 있는 대로 5살에 아버님을 10살에 엄마를 잃습니다. 이때의 심정과 에피소드는 수필에 절절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때가 삼일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이었고, 학교갈 나이가 되어 서울의 제일고보((第一高普) 부속초등학교 입학하게 됩니다. 이후 26년까지 같은 학교인 제일보고를 다녔습니다. 26년에는 상해로 가게 되는데 거기서 평생을 존경하게 되는 안창호 선생님과의 만남을 갖게 됩니다. 도산선생과의 인연은 수필에도 여러 군데 등장하여 그에 대한 애정과 존경 그리고 후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상해로 유학을 간 동기의 하나는 그분을 뵐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었다. 가졌던 큰 기대에 대하여 환멸을 느끼지 않은 경험이 내게 두 번 있다. 한 번은 금강산을 처음 바라보았을 때요, 또 한번은 도산을 처음 만나 뵌 순간이었다. 용모.풍채.음성 이 모든 것이 고아하였다. 그는 학문을 많이 하신 분은 아니었지만, 예리한 관찰력과 명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계셨다. 그는 숭고하다기에는 너무나 친근감을 주고 근엄하기에는 너무 인자하였다. 그의 인격은 위엄으로 나를 억압하지 아니하고 정성으로 나를 품안에 안아 버렸다. (중략) 내가 병이 나서 누웠을 때 선생은 나를 실어다 상해 요양원에 입원시키고, 겨울 아침 일찍이 문병을 오시고는 했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 장례에도 참례치 못하였다. 일경(日警)의 감시가 무서웠던 것이다.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베드로보다도 부끄러운 일이다.
29년에는 호강대(University of Shanhai : 요즘은 표준말 논란으로 후장대라고 부드더군요) 예과에 입학합니다. 예과는 지금으로 치면 preparatory school, 본과 입학을 위한 예비 과정입니다. 이후 31년에 영문과에 입학해서 평생을 걷게될 영문학자로서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37년 졸업할 때까지 국내와 오가면서 계속 공부를 했습니다.
등단은 예과에 다니던 30년에 [신동아]에 '서정소곡', '소곡', '파이프' 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우리 문단에 등단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금아 선생은 우리 문단을 근 80여년을 지켜오신 대선배이셨습니다. 졸업후에는 귀국해서 서울 중앙상업학교 교원을 거쳐서 해방이된 45년부터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서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는데, 바로 이때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밤마다 사과박스를 책상삼아 썼던 글이 <수필>의 근간입니다. 음악도 글도 극한의 어려운 상황에서 더 좋은 작품이 나오는 법인가 봅니다.
휴전후에는 하버드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2년간 체류하게 됩니다. 이때 기억할만한 두번의 만남이 있는데, 당시 미국에 가기 위해서는 일본을 거쳐야 했고, 이때 아사코와의 만나지 아니하였어야 할 세번째 만남이 있었습니다. 바로 수필 '인연'으로 이어지게 되죠. 그리고, 금아 선생의 대표적인 번역시로 유명해진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의 로버트 프로스트의 만남입니다. 헤어질 때 그에게 받은 시집을 후에 번역해서 소개하셨고, 우리도 프로스트의 시를 좋아하게 되었죠.
그를 마지막, 지금 생각하면 영영 마지막 만난 것은 내가 보스턴을 떠나던 날 오후였다. 전화를 걸었더니 곧 오라고 하였다. 그는 자기 집 문 앞에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우리들의 우정에 대한 몇 마디 말과 서명을 한 시집을 나에게 주고 나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헤어질 때 나를 껴안고 오래 놓지 않았다.
교단에서의 금아 선생은 상당히 엄하셨다고 하네요. 특히 복잡하고 어려운 문장을 쉽고 간단한 문장으로 바꿔서 해설해 주시는 능력이 탁월하셨다고 합니다. 당신의 글과도 통하는 이야기지요. 남자 제자들 중에 눈물을 뺄 정도로 호되게 혼난 경험을 이야기하는 노제자들의 이야기도 있고, 하지만 역시 이쁜 여학생들에게는 학점에서 특혜(?)를 주셔서 원성을 샀다는 이야기도 있군요. ^^ 불후의 명작인 <수필>이 출판되게 된 것은 74년 교수직을 퇴직하시고 미국여행을 하고 돌아오신 후 입니다. 이미 60년대에 시인으로서 맑고 이쁜 동시와도 같은 시세계를 보인 <금아시문선>과 <산호와 진주>가 이미 세상에 나와 있었죠. 제가 좋아하는 그림이라는 시를 잠깐 보고 넘어갈까요.
나는 그림을 그릴 때면
하늘을 넓고 넓고 푸르게 그립니다
집과 자동차를 작게 그리고
하늘을 넓고 넓고 푸르게 그립니다
아빠의 눈이 시원하라고
하늘을 넓고 넓고 푸르게 그립니다
그리고, 마치 원래 우리말로 씌여진 시처럼도 느껴지는 세익스피어 <소네트 시집>과 함께 76년도에 범우사에서 <수필> 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됩니다. 제가 <수필>을 구입했을 때는 이미 국정 교과서에 몇개의 글들이 씌여 있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범우사 문고에서도 맨 앞의 1번을 달고 있었죠. 정말 다시 생각해 봐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주변의 것들의 소중함과 소소한 일상이라는 것이 따뜻하고 감사해야 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찰스 램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찰스 램 수필집> 이나 <세계의 명시> 같은 책들을 용돈을 아껴서 사게 된 것도 선생님 때문이었죠.
![]() | 인연 피천득 지음/샘터사 |
![]() | 수필 피천득 지음/범우사 |

아름다운 여인들에 대한 애정도 잊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책 속 곳곳에 아이를 가진 이쁜 엄마들과 아가씨들에 대한 애정이 잘 나타나고 있죠. 물론 딸 피서영 박사는 말할 것도 없고 서영씨가 어린 시절 갖고 놀았다는 인형 난영이는 서영씨가 미국 유학을 떠난 후 내내 선생의 침실에서 함께 잠을 잤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목욕시키고 예쁜 핀으로 머리를 묶어 주고 밤마다 눈을 감겨 재우고 아침엔 깨워주었습니다. 곰돌이들은 눈을 감을 수 없기 때문에 안대를 씌워줍니다.
'마지막 애인' 잉그리드 버그만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죠. 술은 물론 (아 제가 금아 선생과 비슷한 체질이기 때문에 술에 대해 쓰신 글은 참으로 절절하게 와닿습니다) 평생 담배를 하지 않으셨던 선생이 '반사적 광영' 으로 필립 모리스를 한갑 피우셨다고 할 정도로 사랑하신 분입니다. 서재에서도 갓 데뷔한 시절의 청초한 사진과 전성기의 원숙함이 느껴지는 사진 2장을 바이런, 셸리, 예이츠와 같은 위치에 두고 있습니다. “날 사귄(?) 덕분에 저런 훌륭한 이들과 항상 함께 있으니 잉그리드 버그먼은 호강하는 거야. 아무리 유명하고 예쁜 배우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지는데 난 수십 년간 변함없이 저 사진을 간직하고 매일 보고 생각하거든. 잉그리드 버그먼도 행복할 거야.”
참고로 보스턴 대학의 피서영 교수는 작년의 노벨상 수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요즘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암흑물질과 인플레이션 우주론의 연구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플레이션 우주론의 알렌 구쓰(Alan Guth)와 함께했던 인플레이션은 물론 초기 우주의 양자역학적인 요동에 관한 연구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자랑스러운 한국인입니다. 그리고 피서영 교수의 아들이자 금아 선생의 외손자 되는 현재 스테판은 촉망받는 청년재사로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딸이 물리학을 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금아 선생으로서는 손자가 음악을 하게 된 것을 너무도 좋아하셨을 겁니다.
창밖은 오월인데
너는 미적분을 풀고 있다.
그림을 그리기에도 아까운 순간
라일락 향기 짙어가는데
너는 아직 모르나 보다
잎사귀 모양이 심장인 것을
크리스탈 같은 美라 하지만
정열보다 높은 기쁨이라 하지만
수학은 아무래도 수녀원장
가시에도 장미 피어나는데
'컴퓨터'는 미소가 없다.
마리도 너도 고행의 딸.
피서영 교수와 외손자 스테판에 대한 내용은 아래 이웃분들의 글을 참고하세요.
2002년 월드컵때의 금아 선생님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겠죠. "해방 이후 이렇게 기쁘고, 감동적인 순간은 없었어," 당시 93살이시던 금아는 이땅의 젊은이들의 축제에 신명이 나셨습니다. 특히 '붉은 악마'들의 응원에요. 월드컵 기간 내내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생활하셨고. 첫승 이후 16강에 든 이후에는 누구에게 전화라도 올라치면 격앙된 목소리로 여보세요 대신에 "V.I.C.T.O.R.Y 필승 코리아"로 인사를 하셨다고 하죠.

붉은 악마들의
끓는 피
슛! 슛! 슛! 볼이
적의 문을 부수는
저 아우성!
미쳤다, 미쳤다
다들 미쳤다
미치지 않은 사람은
정말 미친 사람이다
- 월간 <샘터> 2002. 08월호 중...
이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 보니 더욱 보내드리기가 싫군요. 하나 더 금아 선생님이 평생을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한탄스럽다고 평생 후회하시는 일이 몇가지 있습니다. 본인의 소심하고 겁이 많은 성격에 수혜를 받은 엘리트로서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는 커녕 두려워서 도산 선생의 장례식에도 가지 못하게 했고, 특히 4.19 때 죽어가는 제자들을 위해 앞에 나서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타고르의 <기탄잘리>에 나오는 '부당한 권력 앞에 굴복하지 않게 하시며.." 라는 귀절을 평생 자신의 인생관이라며 참회하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서 행동하지 않았던 지성이라는 의미에서 비판은 수긍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금아 선생이 절친했던 춘원을 기억하며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갈음하고자 합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기뻐할 것이나, 기쁜 일이 있더라도 기뻐할 것이 없고, 슬픈 일이 있더라도 슬퍼할 것이 없느니라. 항상 마음이 광풍제월(光風霽月) 같고 행운유수(行雲流水)와 같을지어다.”
이제 정말 금아 선생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실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선비는 죽으면 학이 된다고 하던가요. 그리운 어머니와 함께 학춤을 추고 계실 선생님을 상상해 봅니다.

"정말 '사랑' 을 하다 가셨습니다. 언제나 제 마음 한구석에 그 '사랑'은 또렷이 새겨져 있을 겁니다."

바닷가를 거닐면서 젖은 모래 위에서 조가비와 조약돌을 줍듯 모아둔 가야금 소년,
항상 파도가 있어 깊은 바다 밑에서 감히 산호(珊瑚)와 진주(珍珠)를 캐내지 못하는
겁 많은 가야금 소년….
- <산호와 진주와 금아> 중, 최인호
“사람이 저렇게도 늙을 수가 있구나 하고 그분의 늙음을 기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다. 나이 들수록 자신의 말년에 대한 근심은 더해만 간다. 마땅한 본을 보여줄 늙음의 선배가 귀하기 때문이다…. 연세가 들수록 확실해지는 아집, 독선, 물질과 허명과 정력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집착 등은 차라리 치매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도 늙음을 추잡하게 만든다. 그런 것들로부터 훌쩍 벗어난 그분은 연세와 상관없이 소년처럼 무구하고 신선처럼 가벼워 보였다. 그러나 그런 것들부터 벗어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PS. 수능 세대에게는 '은전 한닢' 이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익숙하더군요. 하지만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인연' 이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을 겁니다. <TV 책을 말하다>에서 영상으로 구성한 '인연'을 링크해 봅니다. 선생님 얼굴을 떠올리며 영상을 대하니 또 다른 느낌으로 묘하게 아련하고 애잔합니다.







덧글
豺狼/ 이미 사랑하고 계시잖아요. ^^ 비우고 버리는 것은 배워서 되는 것은 아닐텐데, 언제나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