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시아 젠틀레스키 by 다음엇지

나는 같은 손을 두 번 그린 적이 없다

구약성서에는 유디트, 유딧이라는 여성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옛 이스라엘의 홀로 된 왕비였지만 앗시리아가 자신의 나라를 침략하자 적장인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해 그의 목을 벱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전설적인 애국 여성이었던 것이죠.
Detail of Historiated Initial: Judith slaying Holofernes in Manuscript 12

우리나라로 치면 논개쯤에 해당될까요? 성서 속의 이야기를 주로 화폭에 옮기던 화가들은 그 당시 화가들이라고 하면 물론 다 남자들이었죠. 그들 화가들은 유디트의 전설적인 이야기에는 관심없이 보는 이들이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답고 유혹적인 여인이나 요부로만 그립니다.

그러다가 17세기에 이르러 그때까지 그림 속에 등장하던 유디트와는 전혀 다른 전설적인 이야기 속의 그녀의 모습을 가장 절절하게 묘사한 그림이 등장하게 됩니다.
Artemisia Gentileschi Judith Slaying Holofernes (1620)

더 없이 잔인하거나 공포스러운 그림이나 영화의 장면들이 범람하는 요즘에 봐도 충격적인 그림입니다.

그 그림을 그린 화가는 임진왜란때 논개가 유디트의 역할을 하던 무렵인 1593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아 젠틀레스키 입니다. 아르테미시아의 유디트의 그림 정확한 제목은 <홀로 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는 귀족적인 옷차림의 유디트가 분노를 감춘 무표정한 얼굴로 누워서 자고 있는 홀로 페르네스의 목을 잡고 목에 칼을 꽂는 그림입니다.

칼을 꽂은 유디트나 그녀를 도와 남자의 몸을 누르고 있는 하녀나 벌거벗은 몸으로 누워서 고개가 비틀린 채 목에 칼을 맞고 피를 흘리는 남자나 세 사람의 모습이 너무도 뚜렷하고 생생해서 저절로 기분이 오싹해 지는 그림인데요. 하지만 이 그림이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큰 관심과 화제의 대상이 된 데에는 또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르테미시아가 남자의 목을 베는 유디트의 얼굴에 바로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고, 피를 흘리는 남자의 얼굴에는 아고스티노 타시라는 남자의 얼굴을 그려넣었기 때문인데요. 타시라는 바로 아르테미시아를 성폭행한 혐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남자 화가였습니다. 아르테미시아의 아버지의 친구이면서 그의 부탁으로 19의 아르테미시아에게 그림을 가르쳐주던 화가였죠.

하긴, 그림 이전에 아르테미시아와 타시 간의 법정 소송은 그 자체부터가 굉장한 화제 거리였습니다. 사실 성적인 희롱이나 추행에 관한 의식이 강해진 오늘날에도 19세의 여성이 그런 문제로 법적인 소송을 벌이기는 쉬운 일이 아니죠. 더구나 아르테미시아는 당시에는 없던 유일한 여성 화가였으니 사람들의 관심이 자연히 쏠릴 수 밖에요.

그 사건의 실제 결과에 상관없이 아직도 아르테미시아의 삶과 인생을 시도가 소설이나 영화에서 계속 시도되어 오고 있는데요.

아르테미시아는 곰브리치같은 미술사가들에게는 외면당했었지만 이제는 미술사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탐구 대상입니다.
서양 미술사상 최초의 직업 화가였던 여성으로서 그녀는 이전에나 이후에나 어떤 사람도 그리지 않은 화법을 구현한 천재적인 화가였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오라치오 젠틀레스키 역시 당시 꽤 명성높은 화가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손에 이끌려 수많은 명화들을 직접 눈으로 대할 수 있었고 미술 수업도 일찍부터 받았지요. 그녀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은 유별나서 그녀의 나이 12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그 애정이 스토킹 수준까지 정도가 심해졌다고 하네요. 그런 속에서도 그녀는 주부 없는 집의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도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하죠.

그런 재능이 눈부시게 발휘된 작품이 바로 <수잔나와 두 노인>이라는 작품입니다.
Artemisia Gentileschi Susannah and the Elders (1610)

그녀의 나이 17살에 그린 것인데, 워낙 뛰어나서 '아무리 인정하려고 해도 17살짜리가 그릴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아버지 오라치오가 대부분을 그렸거나 상당부분을 덧그려 주었을 것이다', '원래 아버지가 그린 그림인데 후에 타시와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기자 딸의 재능을 입증함으로서 재판에 유리한 판결을 받게하기 위해 아르테미시아의 사인을 적어 놓은 것이다' 라는 설등 그 주장들이 분분하죠.

이런 이야기 말고도 타시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두 사람이 실은 진정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그 사실을 안 아버지 오라치오의 질투와 분개에 의해서 두 사람이 본의 아니게 법정으로 간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완전히 깨진 것이다' 라는 설도 있죠.

아무튼 7개월간의 법정 소송은 아르테미시아의 승리로 끝납니다. 그러므로서 그녀는 자신이 오히려 타시를 유혹한 가해자가 될 뻔 했던 긴 소송에서 명예를 되찾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분노만큼은 그녀로서도 다스리기 힘들었던지 대표작으로 남게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를 그리고, 그 그림을 통해서 타시를 극단적으로 단죄하죠.

그런가하면 고통스러운 기억이 가득한 로마도 떠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건 곧 자신의 모든 생활을 관할하던 아버지의 곁을 떠난다는 의미이기도 했죠. 그 떠남은 때론 많은 여성들이 그렇듯이 아르티미시아 역시 '결혼' 이라는 제도를 통해서였지요. 화가 스티아테시와 결혼해서 피렌체에 정착하게 되는데요. 결혼을 도피처로 선택할 경우 때로는 그 결혼해서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맞이하기도 하지요.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타인을 상처내는 것은 그것이 영혼이든 육체이든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가 저렇게 끔찍하게 그리다니요. 저런 그림을 앞에 두고 복도에 나 혼자 있다는 생각만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나는 이 그림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아르티미시아 젠틀레스키는 유디트의 그림으로 당시 최고의 권력자였던 대공의 부인으로부터 그림을 사지 않겠다는 거절의 말을 듣게 되죠. 꽃과 과일이 있는 정물화와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풍경화, 그리고 초상화만을 즐기는 대공의 부인에게 유디트의 그림은 말할 나위가 없는 충격이었겠죠.

하지만 이 그림의 내용을 잠시 미뤄두고 그림 자체의 색채와 명암을 본다면, 이 그림은 참으로 밝고 특이한 색채와 빛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밝고 특이한 색채와 빛은 어디서 본듯한 느낌도 주지요. 등장인물들에게만 부분 빛을 비춰 준 것 같은 그래서 그들이 캔버스 밖으로 유난히 돋을새김되어 보이는 기법. 바로 전대의 유명한 카라바조의 전매특허였죠.

카라바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피카소같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카라바조의 경우에는 보편적인 유명도는 떨어져도 열광적인 열혈 애호가층이 두껍죠.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 것도 아닌데 단지 그 특이한 색채 효과 때문에 그의 그림을 보고 나면 다른 그림들은 너무 밋밋하고 심심해서 눈이 가지 않는다고 할 정도죠.

아르테미시아는 바로 그런 카라바조의 기법을 계승합니다. 따라하기 어려운 기법을 계승한 것이죠. 그런데다가 그 특이한 빛과 색채 효과를 갖고 남자의 목을 베는 여자의 그림을 그렸으니 대공부인이 소름돋을 만 했죠. 암..

하지만 다른 주제야 어떻든 그녀의 미술적인 재능은 결혼과 함께 옮겨온 피렌체에서 마침내 꽃피기 시작합니다. 겨우 28의 나이에 한림원의 회원이 됩니다. 한림원 사상 최초의 여성회원이기도 했죠. 이제 그녀는 늘 자신에 대한 간섭권을 가지려 했던 아버지와 타시와의 불미스러운 소송에 의한 분노와 좌절감, 자신의 결혼 지참금과 화가로서의 재능에만 기대어 살려는 남편의 무능까지도 다 극복하고 조화시켜나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아버지와의 모든 연락을 두절하는 절연 상태를 극복하는데에는 20여년의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사실 때로는 가족과의 불화와 상처가 친척이나 친구와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고 오래가지요. 가장 가깝기 때문에 기대도 크고 그래서 아픔과 실망도 더 크기도 한 걸 텐데요. 그래도 어쨌든 살아 있을 때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고 다시 만나게 됩니다.

오라치오는 아르테미시아가 마련해 준 긴 의자에 누워 눈을 크게 뜨고 마지막으로 딸을 응시했다. 그녀의 머리가 풀어 헤쳐져 있었다. 크고 검은 커다란 팔레트가 맨 살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엄지와 검지 사이로 12개의 붓을 잡고 있었다. 마치 긴 꽃다발 줄기처럼 빛을 잡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신은 우리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싶지 않으실거다.

- 알렉산드라 라피에르,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아버지를 다시 찾아간 것은 결혼 후 그를 떠난지 25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 25년동안 화가로서도 남자로서도 점점 쇄락해가는 그의 아버지 오라치오는 몇번이나 그녀를 불렀지요. 엄청난 재능을 가진 자신의 사랑하는 딸, 자신의 말에 의해서만 움직이던 타시 사건 이전의 딸을 되찾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아르테미시아는 절대로 그 부름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빠져나온 아버지의 독점적인 애정욕과 수치스러운 타시와의 소송사건인데 다시 돌아가겠습니까. 그녀는 철저하게 아버지의 부름을 외면합니다.

하지만 일설에 의하면 아버지 오라치오 쪽에서 몇번이나 찾아간 아르테미시아를 외면했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다 그녀도 더는 젊지 않은 나이가 되었을 때, 두 사람다 모두 그 어떤 애증과 분노도 헛되다고 느꼈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제서야 용서와 화해의 감정이 생긴 것일까요. 1639년 노쇄한 몸으로 그리니치 궁의 천장화를 그리던 오라치오는 다시 또 아르테미시아를 부릅니다. 그녀의 나이 46이었습니다.

드디어 아르테미시아는 아버지를 찾습니다. 25년만에 제회한 부녀는 아버지가 그리고 있던 작품 <평화와 예술의 승리>을 함께 완성하죠. 부모와의 애증과 오랜 결별을 화가로서 창조적인 작업을 통해 완벽하게 화해로 승화해냅니다. 그런 공동작업이 완성되는 장면을 알렉산드라 라피에르는 소설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에서 신이 둘 중 어느 한 사람도 버리지 않고 둘 모두를 선택하여 화가로 성공시켰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후 시간이 흐를 수록 그 빛을 더해가는 화가는 당연히 딸인 아르테미시아였죠. 그리니치 궁의 벽화그림조차 아르테미시아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완전한 실패작이였을 거라는 이야기도 나왔죠.

지금 피에트로 안토니오 스티아테시의 아내 아르테미시아 로미는 남편이 미카엘이라는 가구 세공인에게 어떻게 빚을 지게 되었는지 글로써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인 아르테미시아는 소인이 계약하지 않았는데도 벌써 소인의 지참금 전부를 현금으로 바꾸었던 남편으로 인해 진 빚을 갚으라고 하는 그 판결을 면제해 주실 것을 전하께 무릎꿇고 간청합니다.

어떤 한 사람의 생활은 밖으로 드러나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큰 차이를 갖고 있을 수 있죠. 밖에서 보기엔 부족할 것이 없고 더없이 행복할 것 같은데 집이나 마음 속 내면에는 불행이 더 없이 클 때도 있습니다.

화가로서 더 없는 성공가도에 있던 30대의 아르테미시아가 바로 그랬습니다. 외국의 화가들은 그녀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길 정도였고, 그 영광에 겨워 한 프랑스 화가는 그녀의 화실을 방문해서 붓을 든 그녀의 손만을 따로 그려서 간직할 정도였죠. 또 한명의 화가는 아르테미시아의 자화상을 본뜬 판화를 만들고 그 밑에 자신의 서명과 함께 '그림의 천재인 아르테미시아를 부러워하기는 쉽지만 그녀를 모방하기는 어렵다'라는 헌정사를 써넣기도 합니다. 유명한 반다이크가 그린 초상화 속의 인물, 영국 국왕의 전속 음악가였던 니콜라스 러니어 같은 이들이 아르테미시아를 열렬히 사랑하고 지원하고는 헀죠.

하지만 밖에서 드러난 화려한 외형적인 성공에 비해서, 집안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겪었던 고통과 불행은 참으로 큰 것이었습니다. 앞의 호소문에서 자신을 아르테미시아 젠틀레스키라고 쓰지 않고 아르테미시아 로미 라고 성을 바꿔 쓴 것을 보면, 실제로 그 당시 그림에 로미라는 서명이 있기도 합니다만, 아무리 자신이 직접 선택한 것이었다고 해도 하버지의 성까지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에 깃든 상처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다 그녀는 결혼 후에 얻은 아이 셋을 모두 차례 차례 잃고 맙니다. 네번째 얻은 아이만을 간신히 구할 수 있었죠. 그리고 일찌기 타시 사건이라는 엄청난 소송 사건을 겪었음에도 자꾸 크고 작은 소송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남편의 빚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구요. 그러다 보니 남편의 빚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는 앞의 호소문같은 것을 당신의 실권자에게 보내야 하기도 했습니다.

당대 최고 화가였던 그녀에게는 대단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겁니다. 겉보기의 행복과 자신의 불행사이에는 그런 일들이 있어서 남들이 함부로 겉보기만 갖고 평가할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차이가 삶의 공평함에 대한 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여성이라는 존재감이 더욱 더 커져가는 시대의 흐름때문인걸까요. 아니면 인생의 업적은 최종적으로는 욕심내거나 욕망하는 자, 상처주는 자의 것들이라기 보다는 고통받아 울었던, 그러면서 그 고통을 이겨냈던 이들의 것이기 때문이었을까요. 최근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 여성 화가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여름의 막바지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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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맨티스트 2006/08/22 11:37 # 삭제 답글

    좋은 책과 함께 위대한 화가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글을 잘 봅니다. 동류라서... 흠.
    특히, 우리나라 재즈의 원류는 저를 능가하십니다.
    자부심을 가지셔도 됩니다. 하하하.
  • 다음엇지 2006/08/22 15:36 # 답글

    로맨티스트/ 어서오세요. ^^ 요즘 바쁘신가 봅니다.
  • 다음엇지 2007/01/02 16:43 # 답글

    어둠의 경로로 97년의 <Artemisia>를 찾아 봤는데요. 역시 타시와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네요. 내용은 "타시와 아르테미시아는 실제 사랑하던 사이였다"는 설을 기본 줄기로 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화면과 슬픈 사랑이야기로 끝이 나는 인상적인 영화인 것만은 틀림없더군요. 기대만큼 좋은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매력을 보여주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틀림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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